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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한마디에 나는 오늘도 졌다.

이제 이길 수는 없는 건가?

by 초보 글쟁이

자식이라곤 하나가 있는데 그놈(?)이 벌써 17살이 되었다. 어릴 땐 너무나 예쁘고(물론 내 눈에만 그렇겠지만..), 엄마 말이라면 그 어떤 말을 해도 다 사실인 줄 알고 있던, 세상에서 제 엄마가 제일 똑똑한 줄 알던 아들이 이제는 나의 말에 따박따박 한마디도 지지 않는 고등학생이 되어버렸다.

저렇게 말을 잘했나? 싶을 때가 있다.


태어나서 말문이 늦게 터진 아이였다. 오죽하면 친정엄마가 '혹시 바보를 낳은 거 아닌가?'라고 걱정했을 정도였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과묵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도 엄마들의 혼을 빼놓는다는 일명

"엄마 저건 뭐야?"

"엄마 저건 왜 그래?"

"왜?"

이런 질문들을 잘하지 않았다. 간혹 묻기는 했으나, 내 혼을 빼놓을 정도 까진 아니었다.

그래서 과묵한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 상담을 갔었는데, 선생님께서

"어머니, ㅇㅇ이가 TV를 많이 보나 봐요?"

"TV요? 아니요 잘 안 봐요 제 아빠나 스포츠를 보고 저나 ㅇㅇ이는 TV 잘 안 봐요"


정말 그랬다. 내가 TV를 안보다 보니 아들도 잘 안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ㅇㅇ이가 말을 너무 잘해요 그래서 저는 TV를 자주 보나 했어요. 어머니랑 대화를 많이 하나 봐요"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아들~,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 거니?


그러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아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들과의 대화도 전보다 많아졌는데 내가 아들놈의 말을 가끔 이길수도 반박할 수도 없을 때가 있다.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어느 날, 핸드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에게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서

게임을 하는 아들 옆 다가가

"아들~ 엄마 꿍꼬또 기싱 꿍꼬또

엄마 무셔오" 라며,

아들 얼굴 앞에서 한껏 귀여운 척하며

두 주먹을 양볼에 붙이고 두 눈을 열심히 깜빡이고 있는 나에게 아들이 한마디 했다.

"귀신이 들렸는데?"


"......."


또, 어느 날 아들과 같이 있다 주방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그만 방귀가 나오고 말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괜히 무안한 마음에

"일부러 뀐 거 아니야 이 나이 되면 괄약근에 힘이 없어서 그런단 말이야"

아들이 날 쳐다보며 말했다.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런데, 엄마 엉덩이 조금 있으면
말도 하겠더라"


"........"

방귀소리가 사람 말소리와 비슷했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예전엔 안 그랬는데 자꾸 말이 헛나왔다. 머리로는 그 단어를 말한다고 하는데 입으로는 다른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얼마 전 "아들~ 엄마 콜레라 백신 접종 예약하는 거 잊을 수도 있으니까 안 까먹게 달력에 적어줘"

"콜레라? 코로나겠지"

"맞다. 코로나! 엄마가 항상 말했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고~"

"엄마, 그건 그냥 개떡이 아닐까?"


"........."


최근엔, TV를 보던 아들이 도베르만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안돼! 지금 키우고 있는 것(네 얘기하는 거다)도 갖다 버리고 싶단 말이야!"


"에이~ 엄마를 갖다 버리면 쓰나?"


".........."

나 이 집에서 키워지고 있던 거뉘?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엄마 치매 오고 그러면 요양병원에 보내 요즘엔 다 그렇게 하더라"

"그래도 엄마를 병원에 어떻게 보내? 내가 데리고 있어야지"

'올~ 그래도 아들 노릇하려나 보네'


"병원에 보내 어차피 너 기억도 못할 거고 아저씨 누구세요? 그럴 텐데 너만 힘들어져 "


"알았어. 그럼 아빠랑 한 병실에 입원시켜 줄게"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던 제 아빠가

"아빤 다른 병원으로 보내줘. 거기서까지 엄마랑 있고 싶지 않아"


"다 두 사람을 위해서야~
어차피 엄마랑 아빠 서로 부부인지
기억도 못할 거야
그런데 서로 기억은 안 나는데,
서로 얼굴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막 날 거야
그냥 거기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거보다 서로 싸우면서
지내는 게 더 좋지 않겠어?
활력도 생기고~"


"............."


그때, 우리 부부는 다짐했다. 지금부터 콩이라도 열심히 헤아리면서 치매는 걸리지 말자고.... 한 병실에 입원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조그맣던 아이가 벌써 내 키를 훌쩍 넘어 커버렸고, 얼마 전 건강검진 수면내시경 때 바쁜 제 아빠를 대신해 내 보호자가 되어줄 정도로 든든한 아들이 되었다.


요즘 아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가 없다.

소리라도 지를라치면 내 다리를 걸어 방바닥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엄마 이제 자야 될 시간이야"라며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일어나기도 귀찮아 누워있다 보면 어느새 화도 풀리는 경우도 많고, 그대로 정말 잠든 적도 있었.


아무래도 아들이 나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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