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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Apr 16. 2023

모든 것이 낯설다.

이직도 팀장도 처음.


이만큼의 경력이면 ’낯섦‘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덤덤하고 초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직 후 2개월 동안은 두려움과 불안의 짓눌림은 여느 때보다도 더 하는 듯했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음’ 일 때에 불안을 느끼는데 동종업계임에도 너무도 다른 일, 사람, 문화와 속에서 ‘관리자’ 역할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과한 고민과 무기력감까지 찾아왔었다.

분명 나의 역할과 커리어를 확장하기 위해서 15년 만에 내 무거운 연차를 이고 익숙했던 일터를 떠났는데, 막상. 모든 것이 처음은 그렇듯이 녹록지가 않다.

2달여간은 내내 ”이건 내가 못할 것 같은데…“ ”이건 아닌데... “하며 멍해지기도 하고, 그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었다.


그럼에도 충격과 공포 자체인 마의 구간은 조금씩 걷혀가고 있는 중이다.

팀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개개인의 성향과 역량을 파악하고, 우리 팀이 강화해야 할 업무와 하지 말아야 할 업무를 나름 정리해 보고, 같이 일하는 유관부서와의 관계와 협력사등을 파악하며 얼개를 조금씩 잡아나갔다.

전반적인 것들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나니 불안은 조금 덜해졌지만, 내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 내에 해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큰 기준이 있어야겠다고 느꼈다.

첫 번째. 내가 생각하는 ‘일’의 기준을 세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한다.

두 번째. 팀장이기 전에 ’나‘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1. 팀의 역할 정의(업무 환경 개선)

이전 회사에 비해서 작은 규모의 회사에 오니, 팀 역할이 명확한 경계가 없었다. R&R(role and responsibility)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니, 애매하게 비주얼 관련된 일은 우리 팀에게 부당하게 넘어오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내가 속한 디자인팀이 ‘operational’ 업무가 주가 될 것인지, ’creative’ 업무를 주로 할 것인지 조금씩 다시 포지셔닝을 할 필요가 있었다.


2. 집중 업무 강화(쓸데없는 업무 클렌징)

집중할 수 있는 업무를 정의하고 나면 그 외 쓸데없는 일들이 보인다. 그 일 중에 줄일 수 있는 것들은 줄이고, 가능한 제거 해버려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협력사 pool 안에서 아웃소싱 줄 수 있는 일들은 외부로 이관하여 관리하거나, 아니면 더 연관성 있는 타 팀에 이 업무를 이관한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초반에 변화를 주도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가 않다. 부작용을 고려해서 타 팀과의 관계를 잘 형성한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이미 부작용을 겪고 있다…)


3. 예산 확보와 인프라 활용

필요한 아웃소싱을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절대적인데, 나의 직속 상사에게 근거 자료를 만들어서 잘 설득해 본다. 우리 팀의 역할은 이것이고,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이런 일들은 줄이거나 아웃소싱을 줘야 한다고 설득해 본다. 업무에 비해서 적은 인원, 인력 충원보다는 예산이 덜 든다는 자료가 있다면 더 좋다.


4.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가?

업무를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세부적으로 봐주는 실무형 리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큰 방향의 가이드는 주되 질문을 던져주는 내비게이터형 리더가 될 것인가-

나는 후자의 리더가 되고 싶다.

리더가 세부적인 일을 하겠다고 마이크로매니징을 나서는 순간, 팀원들은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그것만을 쫓게 된다. 개인에게 책임과 주체성을 주지 않으면 피학적인 편안함에서 안주해 버린다.

리더는 개인플레이가 아닌, 일이 되게끔 구조를 관리하는 ‘팀워크’를 만들고, 개인을 신뢰하며 성장시켜 주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리더의 길로 가고 있는지, 이따금씩 스스로 점검해 나가야겠다. 아직 고작 3개월 차 초보 팀장이지만, 3년 후면 조금은 나은 리더가 되어있으리라 믿으며..


무엇이 중한지-

일과 리더이기 전에, ‘나’를 지켜야 한다.

폭풍우 같은 2달 반의 시간을 보내며, 중압감이 심하여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런데 ’첫 팀장‘으로 이런 감정들은 정상이고 당연한 과정이라는 말들이 위안이 된다.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보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내 마음과 행동, 그리고 서서히 시간 사용부터 바꾸는 일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주어진 일들을 꾸역꾸역 해나가다 보니, 기록은 가장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라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렸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의 생각들을 써보니, 소중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다.

쓸 때마다 느끼지만, 나의 생각을 쓰지 않는다면 밀물처럼 쏟아지는 정보와 일상들에게 내 생각은 묻혀버리고 휘발되고 만다.

정보성 글들은 AI가 충분히 대체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생생하게 느끼는 나만의 생각들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니 틈틈이 모아두며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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