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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Nov 12. 2023

드라마 ‘하츠코이’

일본판 나의 어린 시절 ‘응답하라’


나의 첫 브런치 글은 내가 유년시절 일본에서 보내던 시절, 그리고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부모님의 시점을 바라본 이야기였다.

나는 유년 시절의 일부와 10대의 일부, 어린 시절을 2번 일본에서 체류해 본 경험으로 인해 그때의 모든 경험은 나의 정서에 강렬하게 서려있다.

그래서인가, 가끔 일본 드라마나 매체를 접할 때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따라온다.


드라마 '하츠코이(첫사랑)'는 모든 감각이 예민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의 대표곡과 같은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가 드라마 OST이자 중요한 소재이고, 당시 나와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나의 친언니가 이 드라마를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그 시절을 다녀온 듯, 바쁘고 급하게만 흘러가는 내 삶에 잠시 템포를 늦추고 시끄럽고 들썩거리던 머릿속과 마음을 멈추게 해 주었다.

일본판 나의 ‘90년대 응답하라‘


'첫사랑' '운명'이라는 소재가 요즘처럼 마구 도파민을 자극하는 드라마들 사이에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자극들 사이에서 나에게는 더욱 특별했다.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가 한국의 여느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이 드라마도 나에게 '그때의 그 감성'을 떠올리게 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직업 설정은 조금 독특했다. 여자 주인공은 택시 운전기사, 남자 주인공은 경비원인데 과거를 거스르며 현재에 오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타자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 아닌 본인의 인생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드라마 OST 'First love'는 나의 머릿속이 터질 듯이 복잡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었던 노래여서 마음의 위로이자 안식처 같은 노래였다. 그 시절의 해외 생활은 대부분 어둡고 서늘함이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니 밝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배경이 북해도인데, 내가 중학생의 여름 방학 때에 12여 일간 북해도 가족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시에는 작은 차에서 가족 5명이 로드트립하며 점심은 어김없이 엄마표 김치(혹은 반찬 한두 가지를 넣은) 김밥에, 숙박은 주로 캠핑장이었던 것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그러다 중간에 한 번씩 유명 홋카이도 라멘집에서 먹는 쇼유(간장) 라멘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삿포로 맥주 공장을 가서는 생맥주 시음하는 코스를 시켰는데, 엄마아빠는 우리에게 경험 삼아 입을 대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쓴맛에 잔뜩 찡그린 모습을 재미있어하며 한 명씩 카메라에 담는 부모님의 모습, 포착당한 내 표정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도 부지런한 부모님 스케줄에 맞춰 여행 다니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미래의 우리에게 보물 같은 추억을 준 것이었다.

그 시절의 크고 작게 느끼던 것들이 현재의 내가 형성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떠올릴 때마다 나에게 따뜻함과 웃음을 안긴다.

반면, 아팠던 경험 힘들었던 고비는 터진 물집 아래 맨살이 드러나는 것처럼 내 숨이 뱉는 공기만 스쳐도 따갑다. 그런데 거기서 시간이 흐르면 나를 아프게만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지나가기 마련이고,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과 내 가치가 된다.

나쁜 일이건 속상한 일이건 쉼 없이 나를 덮칠 거고 그걸 반질반질하게 다듬을지, 뾰족한 채로 두고 매번 아파할지는 스스로가 결정하는 일이다.

슬픔이 몰아칠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틈틈이 이 생각을 하고 안 하고는 살아가는데 큰 차이가 있다.



드라마의 한장면 by pinterest

‘하츠코이’의 주인공 야에와 하루미치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느리게 풀려가는데, 끝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쓸쓸하고 서글픈 엔딩이고 시한부 행복이었을지라도 한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역시 무언가를 ‘깊게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오랜만에 가을 날씨에 어울리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드라마를 보니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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