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와 봄

디지털 씨앗

by SeoulElectricImages

어릴 때부터

나는 먼저 움직였다.


유행이란 단어를 몰랐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했고,

내가 입은 옷을 따라 입었다.


그건 자랑이 아니었다.

그저 내 시간의 속도가

조금 빨랐을 뿐이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세상보다 다섯 걸음 빠른 사람이

오히려 느리게 살아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속도를 감추는 게

어른의 예의인 줄 알았다.


그래서 회사로 갔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보고서를 쓰고,

정해진 말을 하며 살았다.

내 감각을 잠시 봉인한 채로.


하지만 결국,

시간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 나는

내 감각을 디지털로 박제하고 있다.

영상으로, 음악으로, 문장으로,

내 리듬의 흔적을 심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언제 이 씨앗이 자랄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한 계절짜리 농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유행이 오기 전의 공기를 그리고 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공기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아마 나는 혼자서 수확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숫자가 아니라, 파동으로 밀려올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뿌린다.

리듬 한 줄,

감각 한 컷,

단어 한 톤.


이건 기다림이 아니라

확신의 형태다.

언젠가 세상은

이 리듬의 속도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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