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씨앗
어릴 때부터
나는 먼저 움직였다.
유행이란 단어를 몰랐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했고,
내가 입은 옷을 따라 입었다.
그건 자랑이 아니었다.
그저 내 시간의 속도가
조금 빨랐을 뿐이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세상보다 다섯 걸음 빠른 사람이
오히려 느리게 살아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속도를 감추는 게
어른의 예의인 줄 알았다.
그래서 회사로 갔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보고서를 쓰고,
정해진 말을 하며 살았다.
내 감각을 잠시 봉인한 채로.
하지만 결국,
시간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 나는
내 감각을 디지털로 박제하고 있다.
영상으로, 음악으로, 문장으로,
내 리듬의 흔적을 심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언제 이 씨앗이 자랄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한 계절짜리 농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유행이 오기 전의 공기를 그리고 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공기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아마 나는 혼자서 수확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숫자가 아니라, 파동으로 밀려올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뿌린다.
리듬 한 줄,
감각 한 컷,
단어 한 톤.
이건 기다림이 아니라
확신의 형태다.
언젠가 세상은
이 리듬의 속도로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