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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04. 2024

나는 어느 날 주부가 되었다.

신혼 1년 차에 살림 2개월 차 초보주부가 된 건에 대하여.


꿈 많던 20대의 사정

20대 내내 나는 평생 공부를 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 학문 중에서도 내가 매력을 느꼈던 종목은 바로 미술사. 이십 대 초반, 불안정하던 나에게 정서적으로 크나큰 위로를 줬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통해, 미술이 인간에게 주는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교 휴학 중, 운 좋게도 빠르게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대 초반부터 이어진 6년간의 기나긴 직장인 생활을 잘 이어가고자 다양한 취미를 섭렵했는데, 그중 새해 목표로 취미 프랑스어를 배웠다. 공부를 꾸준히 계속하다 보니, 섬세하고 정교한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프랑스어가 생각보다 나와 잘 맞았다. 1년간 꾸준히 공부해 레벨을 확인하고자 도전했던 프랑스 어학능력 시험 델프 b1에 합격했다. 이후 프랑스어에 더 큰 매력을 느껴, 프랑스어와 미학과 미술사를 함께 배우고 싶어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26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불운하게도 유학으로 대성하고 싶었던 나의 꿈은 집안 사정이라는 이유로 접게 되었고, 나는 일 년간의 대학교 어학과정만을 마친 채 27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도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꾸준하게 미술사 대학공부와 프랑스어 공부를 병행했다. 끈질긴 공부 끝에 마침내 나는 33살에 미술사 학사와 프랑스어 델프 b2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학사 진학 내내 대학교 졸업 후엔 막연하게 미학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미술사와 프랑스어를 쭉 공부해 석사를 가지게 되면, 어디든 나를 학예사로 불러준다면 전국 방방곡곡 계약직을 전전해서라도 이 생활을 낭만 있게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20대의 꿈 많던 내가 가졌던 목표는, 30대의 내가 고려해야 할 인생계획이 빠져있었다. 여성이라면 한 번은 고려할 출산의 선택 여부였다.

매일 꿈만 먹고살아도 행복할 것 같던 나에게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꿈이 있다는 것을 3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꿈을 위해 장기적으로 달려온 내 인생계획에 양육과 가정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으리라곤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다.


33살에 대학원을 가면 나 언제 결혼은 할 수 있나?

출산 시기를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다시 전공 살려 이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해야 하는데, 이거 맞아?




30대 나의 우선순위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감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원대한 소망을 반으로 접고,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선순위를 먼저 이루기로 했다.

재취업, 결혼, 출산


아주 치밀한(?) 취업전략을 잘 짠 덕분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미술관에 입사할 수 있었다. 20대에는 미술관에서 학예연구를 꿈꿨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미술사 전공 학력과 외국어 성적 그리고 기존 기업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미술관 운영기획 소속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래 속도보다는 방향이야, 난 결국 내가 그토록 원하던 미술 계통으로 이직에 성공한 거야.’


입사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던 입사한 해에 예전 직장 선배로부터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이렇게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온 모든 과정이 남편을 만날 운명이었을까? 남편을 만나 행복하고 순탄한 연애를 이어갔다. 그리고 작년 가을, 나는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결혼했다.

모든 게 파워 J인 나의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직과 결혼까지 이뤘는데 다시 주부가 되었습니다.

이 글의 주제다. 의욕도 넘치고, 일 욕심도 많고, 가정생활까지 해나가며 바쁜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내 몸에 과부하 걸린 것처럼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다.


어쩐지 인생이 너무 순탄하다 했어!

주된 원인은 업무 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질환과 내장 질환이 시련의 시작이었다. 이것도 꾸역꾸역 참으며 직장 생활을 이어오던 중,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남편과 떠난 휴가지에서 사고를 당해, 올해 여름 나는 한동안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쪽다리의 발바닥 뼈가 다발로 탈구되어 발 아치가 무너졌고, 발가락 3개의 움직임을 책임지는 힘줄이 파열되었고, 발꿈치뼈라 불리는 종골뼈가 분쇄골절되었다. 한여름 내내 나는 누워 있어야 했다.


하늘에서 신이, 나는 좀 쉬어가라고 다리를 분질러버리셨나 보다. 허허허!


두 번의 수술과 두 번의 입원 그리고 재활치료까지…3달간의 병상생활이 끝나고 10월이 다 되어서야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11월이 된 현재, 병가 휴직 중으로 나는 여전히 잘 걷지 못한다. 양쪽 목발을 가지고 1킬로를 걷는데 4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40분이나 걸리는 이유는 중간중간 발 아치 쪽과 아킬레스건 쪽이 빳빳하게 굳거나 통증이 생기면 앉아서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두꺼운 종골뼈가 아물었다는 말을 들었다. 뼈가 아물기 시작하니 집에서 간단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두 발로 서서 내 몸을 직접 씻고, 식세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찬장을 정리하는 일 등.. 무리하지 않고 집안 정리를 천천히 해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일까? 회사를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인 서랍장, 무질서한 세탁 창고방, 혼란스러운 옷방…

이것이 바로 천리안과 같은 주부의 시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직장 생활을 하며 집을 치우던 행위를 ‘청소’라고 한다면, 부상당한 자택 경비원이 되어하고 있는 현재의 행위는 ‘살림’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살림.. 살림은 무엇일까?




일단 또다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내 인생을 알 수 없다. 어느 정도까지 걸을 수 있을지, 다시 직장 생활이 가능한 다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이 다리로 임산부가 되면 무거운 배로 두 발로 걸을 수는 있을지. 노력해 직장을 얻고 일하며 아등바등 버텨도, 건강하지 못하면 언제든 쉽게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냉혹한 진실.

슬픔은 뒤로하고, 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부터 차근히 잘 다져나가기로 했다.


일단은 주부로, 주부가 되어 살기로 했다.

다시 건강하고 멘탈과 체력이 좋은 아내가 되기.

열심히 집을 가꾸고, 남편과 건강하게 먹고 포근하고 따뜻한 집을 만들기.

그리고 남편과 나를 닮은 예쁜 아이를 낳아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만들기.


꿈이 많던 20대의 나를 거쳐 현실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30대 초반을 지나,

30대 중반의 나는 위의 3가지를 잘 해내는 현명한 주부가 되자 그렇게 다짐한다.

인생이 또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진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에 하나만은 잊지 않고 새기기로 했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인간으로 살자. 그러기 위해선 ‘속도보다는 방향!‘


이상 갑자기 주부가 된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연재 중인 브런치 북과는 결이 다른 조금 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 새로운 매거진 연재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브런치로 만나는 가볍게 커피 한잔하는 친구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럼 다음에 또 주부로서의 고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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