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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Apr 02. 2022

한국으로 귀국하기 3주 전, 그때 그 기억

네팔 해외자원봉사 중도귀국

눈을 스르르 뜬다. 어제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40분이다. 늘 그렇듯 기분이 축 처진 상태로 애써 몸을 일으킨다. 학교가 방학이라 할 것도 없었으나 막상 누워있으면 더 쳐진다는 걸 알기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진 않는다.


어제 낮. NGO 측에서 이런 문자가 왔다.


'KCOC 측과 중도 귀국 관련 절차를 밟았어요. 근데 절차가 3주가 걸린대요. 그래서 거기에 좀 더 있으셔야 할 것 같은데 버티실 수 있으세요?'


문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여기서 지금 1시간도 마치 일주일 같은데.. 3주라니. 앞이 캄캄했다. 학교에서 애들이라도 가르칠 수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가겠지만 네팔엔 방학이 1년에 세 번이나 있다. 그것도 2개월씩. 지난 1년 2개월 동안 방학 때마다 옆 동네 포카라나 수도 카트만두로 가서 동기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친한 동기들은 이미 1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벌써 귀국을 한 뒤였다.


축 쳐지는 다리를 질질끌고 부엌으로가 냉장고를 뒤졌다. 이젠 네팔 음식도 지겹다. 네팔 음식 그 특유의 알싸한 마살라 향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경이다. 저녁마다 내가 한국 음식을 요리해서 지부장님과 함께 먹었는데 같이 식사를 안 한 지도 좀 됐다. 엉망이 되어있는 내 얼굴과 몰골을 보여드리기 싫었다.


계란 프라이를 부쳐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옥상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내 집은 옥탑방이다. 내가 사는 동네엔 높은 집들이 없어 내 앞마당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이웃들이 뭘 하는지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산보다 몇십 배는 더 높은 거대한 산들도 보인다. 처음에 이 풍경을 봤을 땐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친구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나의 일상은 이렇게 멍 때리는 것뿐이다. 인터넷도 너무 느려서 하기가 싫다. 한국에서 가져온 드라마는 이미 동이 난 상태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아무것도.


사실 네팔에 입국했을 때만 해도 네팔 전문가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왔었다. 지금도 솔직히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했다. 네팔어 공부도 해야 되고 버스킹을 위해 새로운 네팔 노래도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 생각엔 내 마음이 이미 병들어버린 것 같다.


우울증과 무기력증 말이다.


하루종일 기분이 쳐지고 환경으로부터 아무런 자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기력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다. 주위엔 온통 듣기 싫은 네팔어만 들린다. 집중할 수 있는 게 없어 도통 시간이 가지 않는다. 


3주. 내 마음에 남은 온 힘을 짜내어 버티면 3주를 보낼 수 있을까.


시계를 본다. 


아직도 아침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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