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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Apr 30. 2022

적게 번 돈으로 크게 만족하자는 철학은 개소린가

고민...또 고민...

요즘 오전 10시~오후 1시까지 커피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고 있다. 문제는 점심을 먹기에 굉장히 애매해진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니 학원을 마치고 간단하게 밖에서 사 먹을 것인가, 1시간 동안 배고픔을 참으며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서 집 밥을 먹을 것인가. 그 기로에서 난 매번 고민을 한다. 나는 현재 먹고 싸기만 하는 백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아내와 합의하지 않은 외식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 번은 너무 배가 굶주려서 학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배를 채우려 했다. 하지만 그 분식집의 튀김은 700원, 떡볶이 1인분은 3천 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먹으면 튀김을 500원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밖에서 먹을 거면 차라리 집 앞 분식집에 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근데 또 집 앞까지 가려니 굳이 외식을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단돈 4천 원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에 뭔가 현타가 씨게 왔다. 결국 이날은 집에 와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나의 승리.


사실 이렇게 아껴 쓰면서도 매번 현타가 오진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동정심이란 감정이 좀 풍부한 편인 것 같다. 적은 돈 가지고 머리를 싸맬 때면 '나보다 없는 사람들도 살아가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라 들곤 한다.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을 때도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었다. 하지만 동정심이란 건, 그것을 느끼게 하는 대상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전제하에 느껴지는 감정이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어쩌라고. 내가 그걸 느낀다는데. 동정심은 인간이 짐승보다 더 나은 생물체라는 증거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평생 짜치게 살고 싶진 않다. 이전 글들에서도 내 철학이 '적게 벌고 크게 만족한다'라고 여러 번 설명했는데 갈수록 '적게 벌고'의 돈 액수가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리 적게 벌어도 집 하나는 갖고 싶고, 중간 정도 브랜드의 옷은 입고 싶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치킨을 먹고 싶다. 시골에서 사는 게 꿈이니 적어도 100평짜리 부지를 사서 촌집을 개조해서 살고 싶은데 이게 적게 벌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적게 벌고 크게 만족하자'라는 나의 철학은 점점 개소리로 변질되고 있다. 그럼 난 철학을 지키기 위해 지금이라도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야 하나. 나는 정녕 변해버린 것인가? 점점 멋있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여러 생각이 든다.


이런 내적 갈등이 마냥 달갑지 않은 건 아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굳건하게 철학을 지켜 멋있는 삶을 살든, 점점 변해서 대중에 휩쓸려 살든 간에 이러한 난제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여 도출된 삶이면 그것으로 됐다. 적어도 주체적이지 않은 삶은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1인분 3천 원짜리 떡볶이를 양심의 가책 없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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