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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0. 2024

중국은 미국이 짜 놓은 판 위에 언제까지 머물까?

양강 대결 구도의 진화 방향에 대하여


어떤 분과 SNS 상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화두가 될만한 질문을 주셨다.


Q. 작금의 현황을 보셨을 때 미국이 중국을 기술 부문에서 질식시키는 전략이 지속가능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나는 이렇게 답을 갈음했다.


A. 짧은 식견입니다만, 질문 주신 내용은 사실 너무나 거대한 담론과 데이터와 제대로 된 분석을 요하는 일이라 한 번에 답변드리기 결코 쉽지 않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미리 말씀드립니다. 


미국이 중국을 현재 기술 부문에서 질식시키는 전략은 전술하였듯, 중국이 미국이 그간 만들어 놓은 현 체제 안에 계속 머물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잘 작동할 것입니다. 질식 전략을 가장 쉽게 작동시키는 방식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원천기술을 이용하는 것이고, 이는 사실 배터리부터 시작하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술 기반 제조업 품목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향후 기술 로드맵 상에 있는 기술 표준(standards)을 미국의 의향대로 선점하고 주도하여 미국의 방식을 따르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기술적 질식을 시키는 방식은 필히 질식시킬 기술과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기술을 구분하는 작업을 동반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미국 입장에서도 불리해질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는 미국은 현재로서는 중국을 대체할만한 '일정 수준 이상 품질을 갖춘, 동시에 충분히 저렴하며, 미국 인구 전체가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고, 지정학적으로 안정된 수입 경로를 거쳐, 미국 달러로 언제든지 구매 가능한 다양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단일 경제권 혹은 국가를 찾기는 매우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EU, 아세안지역, 인도 등을 대체지로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잘 아시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앞으로도 이러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냐면, 결국 경제 성장은 기술의 발전과 혁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계속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의 수준이 저가로 그리고 대량 생산의 방식을 택하여 계속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이 설정하는 기술 질식 threshold가 계속 이동하면서 올라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이른바 moving threshold 전략을 취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일종의 상향 평행선 그리기 전략), 문제는 그러한 상향 평행선이 사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만나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만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아래에 있던 직선은 위에 있던 직선과 교차하며 위-아래가 바뀌게 되는 것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원래 쫒는 2등보다 쫓기는 1등이 더 불안하고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법이죠.


두 번째 포인트는 현재의 체제에 순응하는 중국이 언제까지고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대표적으로는 '중국제조 2025' 같은 전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중국의 거시적 전략은 일단 미국이 짜놓은 판 위에서 어쩄거나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동시에 힘을 기르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기술과 제품(예를 들어 반도체와 자동차, 항공기 등)은 최대한 자국산으로 대체하거나, 자국 내 공급망으로 대체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이나 전략가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꽤 있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간은 중국 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믿는 근거는 여러 개 있을 텐데, 일단 여전히 미국 및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인건비, 그리고 높은 이공계 전문인력 진학률과 배출 규모, R&D 투자의 지속적 상승, 거대한 내수가 뒷받침해 주는 공급망 다변화 등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 입장에서 충분히 내적 힘을 이용하여 더 이상 미국이 설정하는 기술 질식 구조에 순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 경우, 중국은 판을 자신들 위주로 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기술을 아예 대체해 버리는 방식, 즉, disruption이 될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전기차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미국은 IRA 법 등을 이용하여 중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더 이상 중국에 대해 전기차에 대해서라면 기술 질식 전략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저 관세율 상향 조정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중국이 원광부터 최종 EV까지 거의 공급망 전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급망 전역 장악의 비결은 중국이 내연차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일종의 technology disruption을 주도했기 때문인데, 사실 이는 애초부터 중국의 전기차 혹은 배터리 기술력이 너무나 뛰어나서였기보다는, 정책적으로 전기차로 드라이브하려는 중국 정부의 지원 하에, 중국 내에서의 원료-소재-셀-배터리-EV로 이어지는 전기차 공급망이 빠르게 완성되어 규모의 경제도 빠르게 이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충분한 경제성이 확보되니, 그것은 다시 배터리와 전기차 기술 개발로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든 것일 것이고요. 이러한 선순환 사이클은 다시 전기차 규모와 품질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배터리 외에도,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현 기술 체제를 타파하거나 아예 새롭게 대체해 버릴 수 있는 기술 혹은 시스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나 배터리 외에도, 중국은 자신들 방식대로 양자컴퓨터나 양자통신 등의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그것을 향후 글로벌 양자 ict의 기준으로 삼으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분야를 미국의 IBM이나 구글, ionq 등의 기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상업화되는 단계까지는 시간이 멀리 남아 있고,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되지 못 한 영역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중국이 전기차에서 취했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중국의 주요 대학과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고, 특히 quantum photonics나 양자통신 같은 분야는 중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기도 합니다. 


양자컴퓨터뿐만 아니라, 현재 하나둘씩 중국 제조업 분야에서 점유율 50%를 넘기는 영역은 앞으로는 중국 방식대로 판이 짜이고, 이는 그 분야에서 미국이 더 이상 기술적 제재를 하기 어렵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제철 같은 전통적 중화학 공업은 물론 우주항공이나 조선, 그리고 첨단 바이오메디컬 등의 분야는 이미 그렇게 되고 있거나 그렇게 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포인트가 미국 입장에서, 특히 미국 전략가들 입장에서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일 것입니다. 미국은 과거 냉전 시절, 구소련과 바르샤바 동맹국들 같은 공산권 국가들에 대해 기술 제재 및 수출 규제 조치를 자국 단독으로 혹은 COCOM 같은 기구를 통해 충분히 견제하며 재미를 본 경험이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어쨌든 최대의 경쟁 상대였던 구소련을 고꾸라뜨리는 방향으로 몰아가 본 성공의 추억이 있으니, 비슷한 방식을 중국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적용할 수 있다고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구소련과 중국은 전혀 다른 나라이자 체제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도 있습니다. 중국은 구소련과 달리 어쨌든 자본주의를 실질적으로 상당히 받아들인 상황이고, 글로벌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데다가, 인구 대국이고 동맹국들의 도움 없이도 내적인 공급망을 어쨌거나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특징을 미국이 더 냉철하게 고려하여 전략을 마련해야 할 텐데, 미국이 현재 기술적 우위를 이용하여 중국을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미국 입장에서는 큰 고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여전히 중국에 대한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이고 미국인으로 만들 수 있는 개방된 시스템을 갖춘 반면, 중국은 그렇게 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일 것입니다. 중국이 인구 대국이고 인재가 많다고 하지만, 결국 그렇게 양성된 인재 중 더 똑똑한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으로 많이 갑니다. 또한 외국에서 재능 있는 젊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기 어려운 데다가, 간다고 하더라도 영주권 이상으로 정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만큼의 다양성, 그리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 여시 동아시아 전역의 저주가 되고 있는 under 1.0 출생률의 함정에 빠진 상황이고, 인구 순감소 기조가 가속되고 있다는 점은 중국에게 있어 인구는 더 이상 상수가 아니라는 불안을 갖게 할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경직된 정치 체제라는 한계를 탈피하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공산당 일당 체제, 즉, 심지어 당이 국가와 법 위에 있는 체제를 바꾸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포기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산업정책은 본래 큰 불을 일으키기 위한 불쏘시개이자 초반 서바이벌을 위한 부쉬크래프트 정도로만 작동해야 하는데, 그것을 넘어 아예 땔감으로 계속 활용하게 되면 불완전연소에 의한 일산화탄소가 주변에 누적되고 불이 오래가지도 못 하며, 연소 효율이 약해 떌감보다 더 많은 연료를 필요로 한다는 낭비가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이 갖는 이러한 특징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나, 앞서 말했듯,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를 놓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필히 수많은 중국 기업들의 정부 의존도를 강화하는 결말로 이어지며, 민간 기업들의 혁신 방향을 정부가 통제 혹은 관여하는 비효율을 낳게 됩니다. 또한 산업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중국 정부가 재정적으로 집중 지원해야 하는 산업은 아무래도 고부가가치 기술 기반 산업들이 될 텐데, 이 역시 정부 재원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작동하는 것이라, 그 지속 가능성은 항구적인 맥락에서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여러 원인에 의해 경제 위기가 시작된다면, 중국 정부가 애써 구축해 놓은 내부 공급망이나, 수많은 기업들은 순식간에 도미노 무너지듯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단단하게 구축한 내적 생태계와 공급망은 그 단단함에 비례하여 상호 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위험 회피가 외적으로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일 것이므로, 외부의 충격에 의한 영향은 훨씬 멀리 넓게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중 경쟁에서 각국이 갖는 특수성과 상황은 미국이 중국을 앞으로도 계속 기술적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중국은 그에 대항하여 살아 남고 결국 최종 승리할 것인가에 대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어떻게 흐르든, 한 가지 변치 않은 사실이 있다면 한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라는 점, 그리고 당분간도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될 것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또한 한-미 동맹 같은 안보의 프레임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도 쉽게 변하지 못할 것이니, 안보라는 요인을 하나의 상수로 두고,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를 앞으로 다이내믹해질 미-중 경쟁관계를 변수로 보며 설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대부분 중국이 내재화 혹은 국산화하려는, 그리고 나중에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발휘하려는 분야들과 정확히 오버랩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직접 경쟁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략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새로운 포석 마련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짧은 식견이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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