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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줌마 Mar 14. 2022

같은 이름, 다른 이미지

며느라기와 며느리 리포트의 '며느리'


지난해 새해를 맞이하며 설 명절을 맞아 방영되었던 '며느라기'

특히 며느리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며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인데 올해 다시 '며느라기 시즌2'로 방영되고 있다.


시즌1에서는 결혼을 하고 시가식구들과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에 대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여자는 결혼을 함과 동시에 시가에 맞추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여자는 자신의 본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에 전전긍긍하며 속앓이를 하는 모습들.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 아닌데 시청하는 내내 여자는 며느리에게, 그리고 남자는 남편과 시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공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드라마다.


시즌1에서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넘어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부모의 요청과 시누이의 결혼생활은 이해가 되면서 며느리에게는 무조건 따라주기를 바랐던 시가의 요구사항,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남편과의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시즌2에서는 새로운 가족인 아이가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육아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하고 있다.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며느리가 되면서 시가식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니 '며느리 리포트'에서의 며느리 역시 일방적인 요구에 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생각이 없었는지 아니면 과거 부모님들이 그래 왔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던지 다른 의견을 감히 제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구에 앞서 설명이 덧붙여지는 경우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먼저 생각이나 의견을 들어보는 경우다.


대부분의 갈등은 상대방의 생각을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하는데서부터 발생하게 된다.

마치 상대방을 자신이 잘 안다고 그릇 판단하는데서부터 이미 갈등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서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동일한 케이스에서 늘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여러 형편, 그리고 그 당시의 자신의 상태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반응과 결과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느라기'나 '며느리 리포트'의 며느리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결과물들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요구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견을 내면서 이미 그것에 대한 반응이나 결과를 정해놓고 묻는다면 당연히 말에, 행동에 그 의도가 묻어나서 듣는 사람이 그걸 느낄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긴 불편함이 자신도 모르게 답을 내기도 전에 눈빛이나 말, 혹은 표정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며느리 리포트'의 책에 대해 묻는 경우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자신이 정해진 답을 가지고 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며느리는 없지?'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지?' 

대부분 불가능한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의 생각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너무 많은 욕심을 낸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며느리는 며느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 환경을 만들어 주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철이 없던 20대 시절이지만 그 안에 신앙인으로서 갖추고, 견뎌야 했던 고민과 갈등, 그러면서 그것을 풀어내려 몸부림칠 때 시부모와 함께 드렸던 가정예배와 아들 대신 붙잡고 있는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으로 더 간절하게 부르짖던 시부모의 기도, 그리고 서로의 생각과 달리 아들 대신 놀아주려 애쓰던 시부모의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가려진 듯하다.


여자와 남자가 있는 이상 앞으로도 '며느리'라는 호칭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에 미리 기대하고, 바라거나 아니면 정해 놓은 이미지와 답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시부모가 생각하는 며느리상, 남편이 바라는 며느리상, 며느리가 기대하는 시가에서의 자신에 대한 생각은 부르는 호칭은 같지만 그 이미지는 사실 너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느새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맞고 있다.

그리고 순간순간 들었다는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100% 이해가 간다.

늘 같은 대답을 했던 딸과 아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은 다른 의미의 말을 하면 무조건 서운해진다고 한다.

전에도 같은 말을 들어보았는데 여자 친구가 생기고, 남자 친구가 생기고부터는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스스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서운함이 아무것도 아닌 말이나 행동에도 부여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들은 부부로서 상대방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고, 조금은 더 신경을 쓰는 경우도 있을 터인데 편하게만 대하던 아이들이 조금은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앞에서 조심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비쳐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것을 자신들이 더 잘 아는데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어느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너무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서로의 입장이지 싶다.

여전히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

누구의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그리고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가족으로서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데 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상처를 덜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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