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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줌마 Feb 23. 2022

소통

소통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책을 낸 지 어느새 2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아는 지인들이 책을 구매해주고, 읽고 난 후의 소감?을 전하는데 대부분 같은 공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지만 엄마이기도 하고, 아내면서 며느리이기도 한 역할들을 감당하며 각자의 상황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먼저 책을 준 경우는 없다.

책이라는 것이 사실 읽고 싶은 내용들인 경우는 스스로 구매해서 읽는 것이 보통이고, 누군가로부터의 선물인 경우는 같은 공감대가 형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향이나 종교, 혹은 상대방에 대해 잘 아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 읽기는 해도 집중해서 한 장, 한 장 공감하며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꼭 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감이 아닌 비평의 마음을 더 담아두기 때문에 그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슷한 이유들로 함께 외부에서 일했던 3명에게 전달한 것 외에는 도리어 책을 사서 읽은 분들에게 정성껏 마음을 담아 사인을 하고 드렸다.

그리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 아직 책을 낸 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그럼에도 꾸준히 판매가 되는 것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공감되거나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이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뒤늦게 방송 프로그램 중에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중에서는 인기의 정도를 넘어 육아 필수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뒤늦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을 흘리며 아이에게, 혹은 부모에게 공감을 하고 혹여 우리 아이들은 그런 어려움이 없었나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나 역시도 어린 나이였고, 과중한 역할로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기에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상황들을 생각해보고, 미안해하거나 스스로 잘했다 칭찬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방송이 끝나게 되고, 눈물, 콧물과 함께 남겨진 휴지뭉치를 보며 뒤늦은 어색함을 스스로 달래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와 함께 보면서 은근슬쩍 마음을 떠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최고였지!"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또 그 말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처럼 공감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거나 정화작용을 통해 회복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한 친구가 책을 읽으며 '눈물이 너무 나서 혼났다. 어쩜 그리 자신의 마음을 잘 아냐 자신을 알아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전했다.

도리어 내가 고마운 일인데 그 친구는 자신이 읽고 다시 책을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며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친구가 자신을 알아줘서 큰 위로가 되었다는 말도 덧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반면 공감이 아닌 오해는 대부분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레짐작 상대방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단정하고는 그것에 대한 서운함을 담은 뒤 그 생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는 분이 MBTI를 성경인물로 알아보는 방법을 소개하길래 테스트해보고 결과를 캡처해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대뜸 "어머 다른 케이스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라는 답을 남겼다.

MBTI의 형식으로 성격을 알아보는 케이스가 굉장히 다양한데 사실 어떤 케이스를 해보아도 늘 결과는 동일했다. 그래서 이상할 것도 없는데 그분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떨 거라고 생각해 둔 것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결과가 다르자 의외라는 답글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런 절차를 서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분은 계속 나에 대해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이 선입견으로 가진 생각과 판단으로 모든 것을 평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경험한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고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자신도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몇 번의 경험이나 평소의 소통과 상관없이 오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도 잘 변하지 않는 기질이 하나 있다.

무례함에 대한 생각이다.

내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구는 경우를 잘 삭이지 못한다.

당연히 내게 구는 무례함은 더욱 그냥 넘기지 못해 이전에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라고 꼭 짚어주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무시해버리지만 그 대신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갖게 되어 만나고 싶은 대상에서 미뤄두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거나 친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행동들, 자신이 필요할 때면 이용하는 듯한 행동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을 주면 사실 끝까지 평생이라도 마음을 주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이 내 성향이다. 상대방이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친구, 선배들이 참 많다.

그러나 15년 넘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던 모임을 스스로 나온 적이 있다. 

한참 교회 이적으로 인한 고민과 갈등으로 힘들 때인데 친구라는 사람들이 그런 고민에 대해 누구 한 명도 공감은커녕 관심조차 없었고, 친구 중 한 명이 큰 수술을 했는데도 알면서 병문안은 고사하고 친구인 우리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같이 가보자는 말에 다들 저녁을 해야 한다, 집에 일이 있다면서 다음 모임에서 보자는 말로 마무리하는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친구 집을 방문해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돌아오면서 서로에게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이 모임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모임에서 빠지기로 결단하고, 한 명, 한 명에게 현재의 마음 상태를 전하며 그럼에도 경조사는 꼭 알려달라고 전하고 그 이후 어느새 수년 동안 만나지 않고 있다.

사실 그 당시 여러 모임을 정리했다. 

마음을 전하고 진실된 소통을 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 의식해서 만났던 모임이거나 모임 후 허탈해졌던 모임들은 다 정리를 했다.

새로운 교회로 출발하면서 사실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잘 못하고 있다.

기질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 들기 시작해서 엉거주춤한 위치에 그냥 서있는 상태다.

그리고 교회만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 속의 사람들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10년째 알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심이 담긴 소통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기쁨, 슬픔,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그것이 늘 사람에 대한 기본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소통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실된 마음으로 한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최소한 생각으로만 판단을 하고 결정해버리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의 생각과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또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에 맞잡을 수 있는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오늘도 그 마음과 손을 가족, 친구들 즉, 내가 사랑하고 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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