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무상계자는 열반에 들어가는 문이요. 고해를 건너는 자비의 배라. 이러므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이 계로 인하여 열반에 드시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도 이 계로 인하여 고해를 건너가나니. 영가여 이제 육근과 육진을 벗어나서 신령스런 식이 홀로 들어 나서 부처님의 위없는 깨끗한 계를 받으니 어찌 다행치 아니하리요.
영가야! 겁의 불이 크게 타면 대천세계 모두 무너져서 수미산과 큰 바다가 말라 없어져서 남은 것이 없거든, 하물며 이 몸의 생노병사와 근심고뇌로 된 것이 무너지지 않을손가.
영가여! 머리털과 손톱과 이빨과 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와 해골과 때낀 것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가래침과 고름과 피와 진액과 침과 눈물과 모든 정기와 대변 소변은 모두 물로 돌아가고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각각 서로 헤어지나니 오늘에 없어진 몸이 어느 곳에 갔는고?
영가여! 사대가 헛되고 거짓 것이니 사랑하고 아낄 것이 없느니라. 영가여! 시작함이 없이 오늘에 이르도록 무명이 행을 반연하고 행이 식을 반연하고 식이 명색을 반연하고 명색이 육입을 반연하고 육입이 닿임을 반연하고 닿음이 받는 것을 반연하고 받는 것이 사랑하는 것을 반연하고 사랑하는 것이 취함을 반연하고 취하는 것이 있는 것을 반연하고 있는 것이 생을 반연하고 생이 노와 사와 우비와 고뇌를 반연하느니라.
무명이 멸한즉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한즉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한즉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한즉 육입이 멸하고 육입이 멸한즉 닿음이 멸하고 닿음이 멸한즉 받는 것이 멸하고 받는 것이 멸한즉 사랑함이 멸하고 사랑함이 멸한즉 취함이 멸하고 취가 멸한즉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한즉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한즉 노와 사와 우비와 고뇌가 멸하느니라.
모든 법이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고요하고 고상한 상이라 불자가 이 도리를 실행하면 오는 세상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모든 법은 항상 됨이 없으니 이것이 생멸하는 법이라. 생하고 멸함이 또 멸하여지면 고요하고 고요해서 즐거움이 되느니라. 불법승의 계에 의지하고 과거의 보승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께 의지하오니 영가여! 다섯 가지 가림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신령스런 식이 홀로 드러나서 부처님의 위없는 깨끗한 계를 받으니 어찌 상쾌하지 아니하며, 천당과 부처님 국토에 마음대로 가서 쾌활하고 쾌활하소서.
서역으로부터 오신 조사의 뜻 당당하여 스스로 그 마음 깨끗하니 자성의 본 고향이라. 묘한 체가 맑아서 있는 곳이 없으니 산과 물과 대지가 참된 빛을 나타내더라.
무상게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줌으로써 이승에서의 집착을 내려놓고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게끔 달래는 불경이다.
죽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은 평등하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이 다가온 사람은 지나간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잘못한 일, 후회되는 일, 고치고 싶은 일, 다시 해보고 싶은 일, 사랑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내가 힘들게 했던 사람, 힘들고 어려웠던 일, 아프고 슬펐던 일, 기쁘고 행복했던 일 등 그동안의 삶의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삶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하더라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미련이 남고 후회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죽음이 가까웠을 때 죽음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상게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생각해본다면 먼 훗날 후회되는 일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죽음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치 조만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조금은 더 아름다운 순간들로 지금을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