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항상 그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안다고 함은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이란 나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함이 많음을 알기에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 자신을 넘어 현재의 모습보다 나 나은 나의 모습이 미래에 보장됩니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는 따지지 않습니다. 따진다는 것은 쉽게 말해 너는 틀리고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이는 없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따지는 이유는 아직 무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 자신이 부족하고 나에게도 잘못이 많다는 것을 모르기에 따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실 알고 보면 별것도 없습니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曾子曰(증자왈)
以能問於不能(이능문어불능)
以多問於寡(이다문어과)
有若無(유약무)
實若虛(실약허)
犯而不校(범이불교)
昔者(석자)
吾友嘗從事於斯矣(오우상종사어사의)”
“증자가 말했다. 능함으로써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묻고, 많음으로써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여기며, 꽉 찼으면서도 빈 듯이 여기며,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음을 예전에 내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겸손할 수 있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나날이 더 나은 나 자신이 가능해집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 성장의 가장 중요한 바탕일지도 모릅니다.
능력이 있기에 능력이 없는 이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기에 그렇지 못한 이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기에 없는 듯 살 수 있으며, 나 자신의 내면이 충실하기에 다른 사람을 받아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저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이는 따지지 않습니다. 따져봤자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잘 따지는 사람이 똑똑해 보이고, 말로 상대를 누르는 사람을 승자라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잘못을 해도 그에게 따지지 않고 질책하지 않으며 그를 탓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따지고 나서 자신이 이겼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은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잠시 동안의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따지고 나서 이겼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을 완전히 잃게 되고, 커다란 상처를 주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본인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져서 항상 이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면,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상처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면 그의 존재 가치가 인정되며 많은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받게 됩니다. 나 자신이 부족함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따지지 않으며 그저 그와 함께하고자 할 뿐입니다.
상대를 비난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데 열중한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고, 그는 그 상태로 정체되며, 더 이상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데 실패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계속해서 인생 전체를 그렇게 따지는 일로 소모하다 끝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최후에 후회만 할 뿐입니다. 받아들임이 따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임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였던 안연에게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공자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