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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4. 2024

그가 나무가 되기 전에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서서히 변하여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에게 소중했던 존재가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을 것이라 믿고 있건만, 그 믿음이 보란 듯이 깨져버린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는 사랑했던 아내가 전혀 다른 존재인 식물로 변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 아내는 서서히 나무가 되어 갑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물만 먹을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을 향해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살아가는 아내를 보고, 무슨 이유로 아내가 그렇게 변해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나무가 되어가는 아내를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무가 되어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을 끼얹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나무로 변하여 식물처럼 그녀의 입에서 열매를 토해냅니다. 아내의 열매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 열매로 나는 대체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내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고작 아내가 토해낸 그 열매를 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더 이상 아내는 존재하지 않고 아내는 그저 변해버린 식물로서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나에게 가까웠던 소중했던 존재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소통할 수 없고, 무언가를 함께 할 수도 없는 그러한 타자로서만 존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려 해도 그럴 수가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운명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이데거 또한 존재는 시간 속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시간 속의 존재란 변화하는 존재를 의미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노자도 도덕경 1장에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참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그것은 참이름이 아니다.”

“비상도”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지요. 


절대적으로 옳은 답을 찾고자 하는 과학의 법칙도 변합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도 20세기 현대과학에 이르러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절대적인 시공간의 개념도 현대에 이르러서 상대적인 시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함없을 것 같은 공간이 휘고 뒤틀리며,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시간도 변하게 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현대과학도 시간이 흘러 미래에 이르면 또 다른 새로운 과학으로 대체될 것이 뻔합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세월이 흐르면 뉴턴의 법칙처럼 그저 예전의 진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패러다임도 바뀝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식체계 자체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주의 세계관이 상대적인 세계관으로 바뀌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를 아우르는 사고체계도 변하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주위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라도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 그가 나무가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그 사람과의 삶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에서처럼 더 이상 아내라는 존재를 식물로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식물로 변해버리기 전에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오늘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는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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