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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05. 2023

당신이 떠난 자리


당신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존재마저 알지 못한 채

평범한 일상을 넘어

찬란한 당신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당신을 숨어서 지켜만 본 것은 아닙니다

당신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당신 앞에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는 있는 듯 없는 듯하여

많은 시간이 지나도 당신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닿을 수 없는 자리에 있던 것도 아닌데

당신과 나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습니다

지나가는 계절마저 퇴색해 버리고

세상이 너무나 작기를 바랐던 나는

떠나가는 당신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당신밖에 알지 못했기에,

나의 영혼은 당신에게 갇혀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기만 하였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더 넓은 세계로 가고 싶어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결국 그 자리에 서 있는 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떠나가는 내 발자국마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하얀 물방울들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제는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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