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나보다 5살, 형은 4살이 많았기에 어릴 적 누나나 형과 같이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누나와 형이 학교에 가면 혼자 집에서 강아지하고 놀던지, 뒷산에 올라가 그냥 나 혼자 돌아다니며 놀았다. 동네 또래 아이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그리 자주 어울려 놀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심심하면 항상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하곤 했다. 엄마가 시장에 가시면 항상 뒤에 붙어 따라다녔고, 집안일을 하시면 옆에서 그냥 빈둥대며 놀았다. 나는 유치원도 가보질 못한 채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했기에 내 기억으로는 아마 엄마가 그때까지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엄마를 많이 기다렸다. 우리 집은 할머니를 포함해서 8 식구였기 때문에 집안에 일이 너무나 많았다. 엄마는 하루종일 앉아 쉴 시간이 없으셨다. 내가 엄마를 따라 나가지 못하는 날엔 엄마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냥 빈방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고, 신문지를 접어 딱지를 만든 후 혼자 딱지치기하며 기다리고, 하얀 아무런 종이에다 크레용으로 그림이나 낙서를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대문이 열리며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가 나면 하던 것을 멈추고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엄마 품에 안겼다. 손에 들고 계시던 것을 힘도 없는 내가 들어서 옮기고 엄마가 하는 일을 그냥 계속 쳐다보기만 하고 그랬다.
해마다 김장철이 돼서 김장을 할 때면 식구가 많은 관계로 배추 200 포기 정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뒷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커다란 항아리를 여러 개 묻은 후 그 안에 김장한 김치를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엄마는 메주를 수십 개 만들어 방에다 걸고 곰팡이가 나면 그것으로 내 키보다 큰 항아리에 가득 채울 정도의 간장도 만드셨다. 시장에 가서 고추를 몇 포대나 사 오셔서 고추장도 담그시고, 된장도 직접 다 담으셨다.
8 식구의 매끼를 따스한 밥과 국으로 먹이기 위해 불도 약한 연탄불로 해내시는 모습을 보며 어린 나는 그냥 두 끼만 해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겨울이 되면 온 식구가 씻어야 할 따스한 물을 덥히고 방마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연탄을 갈러 나가시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이 깨곤 했다. 엄마가 뒷마당 창고에서 방까지 연탄 나르는 것이 힘이 드실까 봐 나는 저녁을 먹으면 내가 창고에서 연탄불 아궁이까지 연탄 한 장씩을 나르다 놓곤 했다. 그러나 연탄을 놓쳐서 많이 깨뜨려 먹기도 했다.
온 가족이 가끔씩 닭을 잡아 삶아 먹기도 했는데, 그런 날에는 시장에 가서 닭 두세 마리를 사 오곤 했다. 그때는 대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모르지만, 시장에는 살아있는 닭만 팔았기에 엄마는 살아있는 닭을 직접 날개 속으로 손을 넣어 숨통을 끊고 닭이 죽으면 펄펄 끓는 커다란 냄비에 닭을 넣은 다음 한참 기다린 후 닭의 털을 다 직접 뽑으셨다. 엄마가 힘이 들 것 같아 나는 닭이 냄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달려들어 닭털을 있는 힘껏 신속하게 뽑아대기 시작했다. 다 뽑고 나면 다른 냄비에 털 뽑은 닭을 넣어 다시 삶았다.
어느 날 엄마가 밖에 나가셨는데 해가 저물어도 돌아오시지를 않는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벌써 돌아오셔서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시질 않으니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만 했다. 도저히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나 혼자 시장에 가서 엄마를 찾아다녔다. 전에 함께 다녔던 길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엄마를 찾아 헤맸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해는 져서 어둑해져 더 이상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직 엄마는 돌아와 계시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누나가 나를 달랬지만, 누나의 목소리는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눈을 떴는데 아침이었다.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 나갔다. 부엌에 계신 엄마를 보고 와락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오늘도 엄마 걱정을 한다. 나는 아마 평생 엄마 걱정을 할 것이다. 내가 엄마 걱정을 하는 건 아마도 엄마는 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