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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Mar 10. 2023

왜 나만 힘든걸까 생각이 들 때면..

인생의 흑과 백

새벽까지 강의를 마치고 나면 한참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삶에 내 일을 더하다 보니 찾아오는 번아웃과 죄책감, 책임감 등으로 생긴 습관은 모든 일을 마치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정신을 맡기거나 늦은 시간 양식이나 커피를 잔뜩 마시고 손톱을 물어뜯는 등 다양한 곳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 덕분에 일찍 잠을 자라며 남편과 투닥거리는 시간도 보내야 했지만 예민한 나의 몸 상태를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주말 아침은 남편의 도움을 받되, 오후 시간은 남편에게 쉬는 시간을 주는 등 돌아가며 쉬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유튜브를 끊으라, 일찍 자라 조언을 하겠지만 예민한 나에게는 바로 잠이 들고 잠이 깨서 바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평생 어려웠다. 평소에도 고민이 많아지면 밤을 새우고 고민하던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고, 새벽 1시 반에서야 강의가 끝난 후 나는 어제도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잠시 잠을 보충해 보려고 당연스레 아침도 굶고 잠을 자려는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린다. 택배기사님이려나 무슨 문제가 생겼으려나 받은 게 잘못이었을까 오랜 친척의 전화, 또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앞으로 동생들과 안부인사도 하고 연락도 하며 지내면 좋겠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부족한 아버지 때문에 전화 노이로제가 걸려 전화는 받지 않는 동생, 그리고 전화벨이 울리면 긴장되는 나, 아버지를 잃고 은둔형이 된 사촌 동생, 그게 걱정되어 챙기려 했는데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자꾸 술 마시고 전화하고 우리를 챙기려 애쓰는 이모,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인생 속에 편안한 안부인사가 무슨 꼰대 같은 말인가 화가 났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적당히 화를 참고 말을 할 수 있었고, 전화를 끊고 다시 잊어버리려 마음속으로 마치 전화가 없던 일처럼 잊어버리려 시간에 맡기며 잠을 청하는 모습이다. 익숙한 화남과 슬픔, 나의 40년을 공감해 주고 도와준 적 없는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조언하고 간섭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들의 눈물과 슬픔을 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우린 이미 어른이 될 나이이고, 나는 그들보다 어림에도 왜 내가 이 상황을 설명하고 동생들이 그 삶을 살도록 우리는 우리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을 해야 하는가.. 나는 왜 이 슬픔과 화남이 또 익숙하고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누르고 있는 걸까?



어젯밤 둘째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의 도움을 받지 못해 둘째 임신 후 아파도 참아야 했고, 둘째 출산 전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연년생 첫째를 무릎에 앉혀둔 채로 산부인과로 향했던 나였다. 당연스레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생각 없이 우리는 다 같이 병원생활을 하고 조리원 생활을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힘들고 손이 닿지 않아서 예민한 첫째를 좀 더 재우려고 팔베개를 빼지 못했을 때 둘째가 일어나면 나도 조금이라도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에 신생아 둘째를 보며 그저 웃었다. 더 안아주지 못해서 그냥 얼굴을 보면 웃어줬다. 그 웃음이 습관이 되어 아이는 내가 웃으면 웃고, 잠이 들기 전 나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웃어준다. 나에게 아침은 흑이었고, 아이들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백이다.


오늘은 남편에게도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와서 그 일을 또 처리하고 오겠다고 늦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고생을 하니깐 괜찮아질 거야라며 서로를 위로한 지 어느새 10년, 조금만 나도 이 젊은 시간을 온전히 행복으로 편안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슬픔과 고난이 자꾸 찾아올 때, 왜 나만 힘든 것일까 고민될 때, 어디선가 읽은 구절을 떠올린다.


"왜 나에게만 불행이 찾아오는 걸까요?"

"왜 너에게만 찾아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우리는 어쩌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나이를 먹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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