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맘 쑥쌤 Jul 06. 2023

정신병 환자를 가족으로 둔 마음은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 장례식장을 갈 때 진심 반의 마음을 섞어서 ”왜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은 빨리 데려가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적이 있다. 친구는 친구같은 아버지였던 가족을 잃은 슬픔에 너무 힘들어했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주기적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곤 한다.


집에 돌아와서 아빠가 미울 때, 너무 속상할 때 한 번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상담에서는 “나를 위해 남을 용서하라.” 라는 말이 있다. 방황하고 철없던 20대를 지나 배움을 실천으로 노력하던 열정이 넘치던 30대의 그 시절 생생하게 상상해봤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고 내가 그 장례식장에 들어간다면 나는 과연 행복할 것인가?‘


그렇다. 그것 또한 상상해보니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 그저 나에게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일까 눈물이 나버리곤 했다. 그래서 또 다시 최선을 다해 받아들이려 했다.


심지어 감히, 나와 아이들 우리 네 가족이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뻐라하는 손주들을 앞세워서 다시 교류라는 걸 해보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이미 체력도 약해지고 주량도 약해지고 늙을수록 더 견딜만해지겠지 싶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 병원에 가둘까봐 불안함에 분명 자신도 잘못되어 가는걸 느끼듯이 하루에도 여러번 사건 사고가 터졌고 내 전화도 불이 났다. 수도를 고친다 했는데 온동네 시끄럽게 하면서 그 좁은 시골길에 포크레인을 부르고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써놓고 공사가 잘못되었다며 돈을 물어내라 싸웠다.


이미 40여년전 하던 직업을 들먹이며 가게를 열겠다고 구청에 찾아간다 미리 명함을 파고, 네온사인 간판을 새벽배송도 가지 않는 그 시골집에 걸겠다고 한다. 무너진 벽을 이 참에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300-400만원을 일주일만에 탕진해버렸다.


두려움인지 불안함인지 무능력에 대한 보상인지 모를 것 같았고, 알 것만 같은 가장이 되고 싶은 아버지는 세상이 변한걸 여전히 거부하고 의심하고 싸움을 일으켰다. 싸움을 멈추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입원을 선택했는데 갑자기 들려온 소식, 뇌경색??


다행히 몸이 돌아오고 2주동안 간병인에 각종 치료에, 아버지는 그렇게 2주동안 천만원의 검사를 받았다. 몇 개월 자신을 가둔 사람들에게 갚아주려는듯 걱정되던 모든 건강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버렸다. 나는 태어나서 2주만에 그렇게 여러장의 검사와 약 목록을 받은 적도 없고, 2주만에 천만원이 나올 수가 있구나. 깨달았다. 아버지는 참으로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구나..


다행히 지원을 받아 돈을 해결하고 또 걱정되는

이 살얼음길을 가야하나.. 싶었는데 머리가 갑자기 띵. 해져버렸다.


예전처럼 보내던 반찬과 국을 “ㅇㅇ읍 ㅇㅇㅇ리“ 여기로 보내달란다. 그 통장의 남은 돈은 다 어쨌냐 물으니 핸드폰 밀린 값을 냈다고, 그러면 돈을 조금 보낼테니 스스로 가서 먹고픈걸 사라고 새벽배송도 안된다 했다. 그리고는 저녁, 보내준 10만원을 또 다 썼다고 더 달란다. 일처리에 썼다고.. 그러게 왜 병원에 가두었냐고..


또, 반복이다.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 싸움과 의심을 멈추었으면.. 이 인연이 내 인생을 그만 가져갔으면..


p.s) 오늘도 가족으로 고생하는 누군가가 생각나는

어느날 밤..



작가의 이전글 어른들의 이야기도 맞지만 내 생각도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