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생일을 축하받는 것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그게 언제부터 인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마흔이 넘은 나이부터 조금씩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작년을 기점으로 생일은 더 이상 챙기고 싶지 않은 날이 되었다.
작년 6월 14일인 내 생일을 지나고 이틀 후 6월 16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벌써 첫 번째 기일이 다가왔다. 그동안 삶은 계속됐지만,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황망함은 전혀 작아지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이틀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내 생일이 챙기고 싶지 않은 날이 된 것은 아니다. 생일이 오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병원에도 갔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지병 없는 입원은 시켜주지 않았다. 내 생일은 마침 일요일이었고, 아버지에게 아이들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본가로 갔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본 아버지는 전날보다 상태가 호전되어 대화도 가능했고, 부축해야 했지만 거동도 좀 더 수월히 하셨다. 손주들을 본 후,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를 필사적으로 붙드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필사적인 삶의 의지를 붙들고자 하시던 아버지가 들으시는 가운데 요양병원에 모시자며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그날 오후 직접 소개받은 요양병원에 상담을 하러 다녀왔다.
아버지는 생전에 자존심이 매우 강하신 분이셨다. 고집도 세셨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고, 정신이 희미해지는 당신의 상태를 겪으며, 요양병원으로 입소시켜야겠다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아내의 대화를 들으시고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 몸을 가누지도 못하시는 상태에서도 굳이 꼭 직접 화장실로 가시려고 하고, 혼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시려고 하시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당신이 듣는 가운데 나는 요양병원으로 모시겠다고 말한 거다.
돌아가시기 전 날, 병원 휠체어에 앉아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기력이 없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코로나19 검사까지 받으셨고, 결국 다음 날 새벽에 잠시 일어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누우신 후 그렇게 돌아가셨다.
멍청했다.
아버지 앞에서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어머니와 상의를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듣고 계시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결국, 아버지께서 내 집에서 내 가족이 아닌, 병원에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그나마도 돌아왔던 삶의 의지를 놔버리셨던 것 같다는 생각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있다가 깨닫게 됐다.
나를 낳아주셨던 바로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삶의 의지를 내 손으로 쳐내버린 거다.
이제는 내 생일이 다가오면 축하받지 않았으면, 다들 잊고 지나가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일을 지내고 이틀 후 아버지의 기일을 맞이할 자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살아계실 때 그렇게 속을 썩이고, 효도하지 못해 놓고서, 이렇게 돌아가신 후에야 뒤늦게 이러는 아들을 아버지는 하늘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나중에 만나 뵈면 꼭 여쭤보고 싶은 질문 중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