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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JayPark Apr 28. 2022

여고생의 아빠

어느새부턴가 브런치 글은 사과로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글 쓸 정신도, 둘러볼 정신도 없었던 것 같아서 또 한참을 내팽개쳐 놓고 있다가 이렇게 다시 짧게나마 글을 쓴다. 그나마도 글 쓸 정신이 있을 때는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써버리고는 '아 이걸 브런치에 썼어야 했나, 그냥 복사 붙여 넣기를 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작고 예뻤던 첫째 딸은 지금 고2의 중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당연하게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집에 와도 방문을 (쳐) 닫고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친구들과 통화를 한다거나 침대에 누워 자는 게 대부분이라 오전에 간혹 엄마가 학교를 데려다주지 못할 때 내가 라이드를 해줄 때 빼고는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어렵다. 

그것이 서운하다거나 걱정된다거나 하지는 않다. 수십 년 전의 나도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을 볼 때 빼고는 내 방에서 내가 할 것을 하고 있었으니. 다만 문 닫고 있는걸 극도로 싫어하셔서 반쯤만 닫아놓았던 것이 다를 뿐이었다. 


첫째 딸은 양가를 통틀어 처음 생긴 아기였다. 미국서 태어나 대부분의 가족이 사진으로만 보다가 돌 즈음 귀국을 해서 한참 예쁜 짓을 많이 할 때 가족 친지들을 만나게 되고, 당연히 큰 사랑을 독차지했다. 엄청나게 밝은 성격에 예쁜 짓도 많이 했고, 그 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첫째는 4년 후 남동생을 보게 된다. 둘째를 출산할 즈음 공부를 많이 했다. 첫째가 받는 충격이 어떤 것에 비견될 것이며, 어른들이 조심하지 않으면 둘째에게 어떤 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첫째 앞에서 모든 어른들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등의 행동강령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첫째는 둘째를 엄청 예뻐했다. 하지만 어른들도 결국엔 엄청나게 예뻐하게 되었다. 어느새부턴가 첫째의 왈가닥 한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면 친한 내 친구들이 첫째의 인사를 한번 받아보겠다고 별의별 아양을 떨었지만 투명인간 취급하는 정도의 내성적인 모습을 여러 면으로 보이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되고, 2학년 올라가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는 분가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첫째는 전학을 하게 되었고, 어쩌면 조부모와의 이별과 전학이란 첫 번째 파도를 맞닥뜨리게 되었던 것 같다. 


첫째가 커가면서 부모로서 엄격하게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장인어른도 매우 엄격한 성격이었기에 그런 모습들이 머릿속 깊이 박혀있을 수도 있고, 나 스스로도 아이가 커가면서 여러 부분들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아이가 바른 길로 갈 것 같았다. 매번 '친구 같은 부모'가 목표라고 떠들고 다니던 나였는데, 조금만 잘못하는 모습이 있어도 불같이 혼을 내는 모습에 첫째는 얼마나 혼란이 왔을까. 거기에 엄마도 엄격하게 하려고 했으니 아이는 어디에 기댈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참담하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한번 더 옮기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에 왔다. 이 시간들을 보내며 첫째 나름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아빠가 '동바형님'이네, '인플루언서'네 하며 하하호호 거리면서 가족들과 정신없이 놀러 다니며, 겉으로 재미있는 사람, 좋은 아빠 같은 얘기를 듣던 바로 그때였다. 감정적으로 힘들던 아이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그 많은 동생들을 돌보게도 했고, 우린 그런 모습들을 사진 찍어 올리며 화목하고 즐거운 가족으로 우리를 소개했다. 그런 모습을 감내해야 했던 첫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첫째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그런 기나긴 힘든 시간들이 있었던 것을 깨달은 아빠는 지금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다시 치유되는 과정을 밟고 싶어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어제도 첫째와 우연히 대화를 잠시 하며 얘기했다. '아빠도 이런 과정이 처음이라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라고.


그저 나는,

'아빠가 서툴러 네가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한 것, 미안하다'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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