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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9. 2024

방전

2023.10.15

배터리가 방전되듯이 사람의 에너지도 채워지지 않고 쓰기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전조를 알아차린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까지도 그것이 마지막인 줄 인지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냥 바닥으로 꺼져버리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 걸까? 2달 동안 쉬는 날 없이 달려왔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바지런을 떨면서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생각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고 그들의 요구를 맞춰주어야 했다. 특별한 메뉴를 개발하거나 가게에 큰 변화를 준 것도 없지만 뭔가 매일이 쉽지만도 않았던 거 같다. 가게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보내는 일상속에서 그것이 가장 큰 감정노동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자 칩거하듯이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기를 수년,,,,, 이렇게 나와서 매일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음료를 준비해 주고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일들이 처음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 잘 적응을 해가고 있고 너무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 태그커피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나의 이런 생활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려는 듯 나는 어려운 일들을 쉽게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느지막이 브니엘 선생님이 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가게 뒤편에 주차를 하고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3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개인 일정으로 일찍 마감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꼭 이런 날은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30-40분 후에 마감을 해야 된다고 말한 뒤 그래도 괜찮으시겠냐고 물어본 후 메뉴 주문을 받았다. 그는 와이프가 공덕초에서 운동하고 있다며 자신의 음료만 주문했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서 첫마디는 '추석 때 좀 쉬었냐"였다. 추석 연휴 내내 쉬는 날 없이 오픈했으며 오후에 손님 없으면 일찍 문 닫고 가는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추석 당일만 손님이 좀 있었고 나머지 연휴에는 손님도 많이 없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의 의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추석연휴에도 카페 앞 도로 위를 몇 번씩 지나다니면서 관찰했을 것이다. 장사가 되는지 손님이 있었는지 그 자신이 얼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휴 때 카페 앞 국숫집에서 식사 후 가맹점 커피를 양손에 들고 가는 그와 그의 가족들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그냥 모른척했다. 그건 그의 자유이기도 했고 태그커피는 긴 시간 앉아서 쉬었다가는 공간을 강조하던 그의 말속에 어쩌면 그의 의중이 다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모녀로 보이는 손님이 오셨고 마감이 얼마 안 남았다고 공지후 주문을 받았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도착했고 마감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브니엘 선생님은 정확히 30분이 지나자 종이컵에 자신의 남은 음료를 담아서 인사를 한 후 공덕초로 향했다. 나머지 손님들도 이미 마감을 공지해 둔 상태라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니엘 선생님은 다음날 아침 10시쯤 와이프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10개를 꼼꼼히 찍은 쿠폰을 내밀면서 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하고는 둘이서 마시고가자 들고가자며 약간의 실갱이를 한 후 마시고 천천히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와이프는 자신들은 여행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12시쯤 일행들을 만날것이고 자신들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갈것이라고 했다. 나는 여행다니시는걸 보면 제일 부럽다고 가게 시작후 여행이 제일 고프다고 말했다. 둘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고 나는 하루키책과 마시려고 준비해둔 꿀차를 챙겨 빈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그들은 이야기하고 나는 책을 읽었던것 같다. 그 이후 그 두분은 카페를 자주 오시지 않는다. 아니 거의 아니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집중해서 책을 읽은것이 그분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들과 더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고 싶지 않았고 하루키책이 너무나 나를 집중하게 만들기도 했다. 방전되어다 싶다가도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채워지는 부분도 크다는것을 깨달아가고있다. 이렇게 또 주말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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