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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20. 2024

닫힘

2024.07.20

한번 닫힌 마음은 좀처럼 틈을 보여주지 않고 꽁꽁 닫힌 채 곁을 내어주고 싶어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고모네가 들어왔고 다음날 문자가 왔다. 내가 카페 하는 것을 이제 알았다고 아이들 선물도 있고 카페로 한번 놀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출장 간 남편이 올 때까지 그 문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남편과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직 마음이 불편하고 이런 마음으로 시댁사람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고모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국 와서 볼일도 많을 건데 신경 쓰지 마라는 말과 함께 카페오픈한 지 1년이 다되어가고 시부모님이 카페오픈하고 한 달 지나서 경주 갔다 오시는 길에 잠시 들렀었다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으니 오빠랑 이야기하라는 말과 내게는 신경 안 써도 되니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길 바란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른 시간임에도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자긴 괜찮은데 내가 불편하다면 안 가겠다면서 다음번에 볼 땐 편하게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보내왔다. 내심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지만 시부모가 미국에 있는 고모랑 거의 매일 통화를 하면서도 내가 카페 한다는 말 한마디를 여태 안 했다는 것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그러고도 남을 분들이었다. 아버님보다 어머님이 더 얄밉기도 했다. 자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고모도 말뿐이지 돌아서서 여기저기 볼일 보러 다닌다고 정신없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줬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편해졌다. 그 속에서 나는 가족이 아니었으니 괜찮다. 가족들끼리 잘 지내다 가면 될 일이다.

나는 나의 가족을 챙기고 카페일을 마무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충분하다.

큰아이는 고3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작은아이는 일반고 진학 후 홍역을 치르듯 한 학기를 버티듯 보내며 자퇴까지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시댁에서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카페 한다고 설쳐대면서 제대로 신경을 안 써서 그렇다고 할게 뻔하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이 뭐 하나 신경 써준 것도 없으면서 더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내 탓을 해대고 원망의 화살을 쏘아댈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들 사이의 내 모습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내 아이들은 내가 잘 키워낼 것이다. 여태껏 도움 받은 적도 제대로 없었고 그저 입 닫고 살아드렸다. 그게 내 몫이고 내 주제라 착각하고 살았다. 자신들이 키워낸 자신들의 자식은 얼마나 잘 컸고 잘되어서 그런 마음을 가지시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은 만큼 나도 그대로 받은 만큼 할 뿐이다. 내가 더 잘해야 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더 소중한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다 느끼며 살아왔기에 내 태도에도 그만큼 감정이 실렸을 것이고 그들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받은 게 없는 내게 원망의 화살만 보내는 그분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관심도 말뿐인 예의조차도 기대하고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보니 세상살이가 이렇게 편할 수 없다. 그들이 대출금과 함께 떠맡긴 아파트를 팔고 마음 편한 곳으로 이사를 꿈꾸며 살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생색내면서 자신들 덕에 산다는 아파트는 우리에겐 10년이 넘게 대출금을 껴안고 힘들게 버티며 사는 곳이었다. 그 덕에 그 좋은 동네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비교당하며 자존감 바닥을 맛보면서 살았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은 그분들이 내주제를 들먹이면서 니 주제에 이러 집이 이런 차가 가당키나 하냐는 말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들 나를, 우리 친정을 개무시하는구나,,, 내가 여태 이런 분들 말이 법인 줄 알고 따르고 굽신거리며 살았구나,,,, 그동안 은연중에 느끼던 모든 멸시와 무시와 무관심들이 일순간 이해가 되면서 내가 등신처럼 살아왔다는 것에 가슴 가득 억울함이 쏟구쳤다. 내가 자신의 아들과 그 좋은 집에 살면서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알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인지,,,, 나는 그분들이 그렇게 생색거리로 던지듯 해주신 모든 것에 반감이 생겼다. 더 열심히 살아봐야 이 사람들 옆에 살면 모두 자신의 덕이라 말할 것이 분명했다. 왜 형제들이 떠났는지 왜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뿐인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들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 곁에서 그들만큼 즐기면서 웃으며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게 가능한 사람들과 즐겁게 사시면 된다. 나도 나와 함께 웃고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면 된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대화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  집이 팔리고 새로운 동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과 웃으며 즐겁게 살고 싶다. 가진 것 안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살려고 애썼지만 그들이 정해놓은 내 주제가 너무 서글퍼서 그들 사이로 다시 끼어들고 싶어지지 않는다. 진작에 떠났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참고 버텼다. 그래서 이제 뒤돌아볼 겨를이 없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방치하듯 보낼 수는 없다. 내 삶은 내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 주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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