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두구동에는 깡통이 있다. 작은 컨테이너 안에 두구동 할아버지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곳이다. 두구동은 부산의 끝자락으로 양산, 기장, 철마와 맞닿은 경계선 부분이다. 크고 작은 창고들이 곳곳에 즐비하고 짐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실제로 태그커피에 오시는 단골분들 중 트럭을 몰고 오시는 분들도 많은 편이다. 너른 들판에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분들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텃밭을 가꾸기 위해 드나드는 분들도 많다. 지게차나 공사차량이 많이 지나다니고 건설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많아 보인다. 깡통은 지게차 사무실로 소장님이 이제 연세가 드시고 몇 년 전 몸이 아프시면서 그 사무실이 동네 어르신들의 아지트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60-70대 어르신들이 그곳에서 훌라를 치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이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지만 텃세 심하다는 두구동에서 그래도 잘 어울리면서 지내시는 분이중 한분이 대물림 가구 김사장님이다. 맨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 낮에 반주를 걸치신 어르신들이 우르르 몰려와 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불량스럽게 보였던 분이 그분이다. 카페 여사장에게 으레 어르신들은 다방아가씨 대하듯이 애인 하자 애인해야 자주 온다며 선을 넘는 말들을 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는데 거기다 낮에 반주까지 걸치고 술냄새 가득하게 풍기며 카페를 찾아오는게 여간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예의를 갖추고 대우를 해드리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니 차츰 그분들도 나에게 더 이상 함부로 말을 하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다들 아버지 같았고 삶의 찌듦이 묻어나는 얼굴과 말투, 행동을 하셨지만 밉지 않았고 안쓰러웠고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라는 말은 듣기 싫어하셨고 멋지다 젊어 보인다는 말 한마디에 안색이 밝아지시고 기분 좋아하시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물림가구 김사장님은 대물림트럭을 몰고 오시거나 커다란 바이크를 타고 오시거나 BMW X6를 번갈아 타고 오셨다. 그분은 이 동네서 가구 공장을 몇십 년 하시며 동네분들과 친분을 쌓아오셨고 많이 베풀기도 했는지 누구도 그분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인성이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잘난 척도 많이 하셨고 이것저것 일도 많이 벌이는 스타일이신 것 같았다. 말도 무지 많은 스타일이었다. 내가 한 번씩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챙겨드리면 은근히 좋아하셨고 이렇게 베풀고 살면 가게가 잘될 거라고 조언 아닌 조언도 종종 해주셨다. 또 카페를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해 주시는 백사장님이 있다. 그분은 이 동네 토박이고 개구쟁이 같은 면을 가지고 계시면서 나이에 맞지 않는 철없는 모습도 한 번씩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그래도 커피가 맛있다며 거의 매일 친구분을 데리고 오셔서 커피를 드시며 나의 지루한 시간을 함께 보내주시는 분이었다. 그 외에도 로버트드니로를 닮은 깡통의 소장님과 농사지은걸 갖다주시던 곱슬머리의 이름에 왕자가 들어가는 사장님과 얼마 전 폐암수술을 하신 사장님은 거의 세분이 함께 와서 커피를 드시거나 더운 날은 스무디를 즐겨 드셨다. 그 외에도 황궁짜장 사장님은 깡통으로 배달을 가거나 와서 음료를 드실 때 다른 분들보다 계산을 많이 하시는 분이시고 동네 어르신의 무게감 같은 게 느껴지는 분이시다. 대봉루 사장님은 자신은 깡통에 드나들기엔 아직 어리다며 부동산 사장님과 샷시집 사장님과 자주 어울리셨다. 카페 바로 앞 공덕초 출신의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고 그분들끼리의 모임이나 행사들이 많았다. 가장 큰 행사는 공덕초 총동문 체육대회였다. 작은 학교 운동장이 꽉 차고 기수별로 음식을 준비해서 시끌벅적 동네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런 곳이 부산시내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해서 나도 그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작은 마을이라 소문도 빠르고 가십거리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모두 순수하시고 감사한 분들이었다. 요즘 어르신들의 가십거리 중 하나가 태그커피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이다. 다들 오셔서 한 마디씩 해주시고 혹시나 내가 손해 보고 떠나는 게 아니지 걱정해 주신다. 백사장님은 이제 정을 떼시려느지 도통 카페에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오셔도 일행들과 우르르 와서는 커피만 사가지고 가시거나 깡통으로 배달만 종종 시키신다. 대봉루 사장님은 계속하지 왜 그만두냐며 놀면 병 생긴다고 계속하라고 하셨다. 커피맛 좋아서 왔는데 이제 주인이 바뀌면 맛도 달라질 거라고 걱정하셨다. 신기하게도 어르신들은 모두 커피맛이 달라질 거라고 하시며 주인 바뀌면 맛도 달라진다고 장담하셨다. 커피나 음식도 마찬가지로 주인의 행동과 말 한마디, 분위기가 모두 맛을 내는데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레시피, 같은 기계로 만들어도 절대 맛이 같을 수 없다고 하신다. 나는 시댁어른들의 멸시와 무관심을 채워줄 곳으로 두구동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바닥나버린 내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이쁘다고 해주시고 잘한다 칭찬해 주시는 말 한마디에 더 기운을 받아서 살뜰하게 챙겨드리게 되었던 것 같다. 나도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보내는 1년이었다. 사람 좋아하지 않고 내성적이던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 별별 대화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많이 그립고 생각날 두구동의 1년이다. 모두 모두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간전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