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현실의 고통을 느낀다는 건
자전적 소설에서는 작가의 생애와 소설이 칼로 무 자르듯이 구별되지 않을 때가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를 소설에 대입하기 때문에 소설 속 사건들이 더 생생하고 뚜렷해진다. 특히 시대적 비극이 담긴 경우가 많아 작가를 비롯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이 입체감 있게 느껴진다. 항상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꼽는 「새벽의 약속」,「제5도살장」도 이런 이유로 마음을 울리는 것 아닐까. 둘 다 그 시대에 대한 아픔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 유머도 한 스푼 곁들여 재미있어서 소리 내어 깔깔 웃다가도 웃음의 끝이 씁쓸한 미소로 끝나게 되는, 읽을 때마다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앉는 소설들이다.
'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연을 쫓는 아이」는 시작부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설은 라힘 칸의 전화부터 시작된다. 라힘 칸은 화자에게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아프간으로 오라고 설득한다. 화자가 26년 전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으로 지금까지도 부채감을 갖고 있으며, 아프간으로 다시 오면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보여주며 소설은 화자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부러울 것 없이 살던 도련님 ‘나’ 아미르는 비슷한 또래인 하인 하산과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낸다. 충직하고 곧은 하산과 달리 소심하고 하산에게 질투심이 있는 아미르는 하산이 힘든 일을 겪을 때 도와주지 못하고, 그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며 오히려 하산을 볼 자신이 없자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쫓아낸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비겁함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평생 부채 의식으로만 남아있었다. 26년 뒤, 아버지의 친구이자 본인에게 아버지와 다름없던 라힘 칸이 아프간으로 다시 돌아오라며 전화를 준 계기로 하산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은 흡입력이 강해 온전히 빠져들다가도, 중간중간 나오는 ‘나는 1975년 겨울이 되어 모든 것이 바뀔 때까지 내가 살았던 삶을 떠올렸다.’ ‘1975년에 일어났던 일과 이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한 토대가 그 첫말에 이미 있었던 것 같다.’ ‘하산이 연을 쫓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75년 겨울이었다’ 등 75년에 비극이 존재할 거라는 암시가 나올 때마다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된다. 책을 한 장씩 넘길수록 75년에 있을 비극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아미르가 어린 시절 하산에게 했던 행동은 분명 잘못이지만, 라힘 칸의 말처럼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미르는 어린애였다. 겨우 열두 살짜리 남자애는 두려움과 질투심으로 순간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그 잘못된 선택을 속죄할 기회도 주지 않는 어른들이다. 1978년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1979년 러시아 탱크가 아프가니스탄에 진군하지 않았더라면, 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하자라인을 대량 학살하지 않았다면 아프간 아이들은 여전히 연싸움 대회를 기다리며 겨울만 되면 설렜을 거고, 아미르는 하산에게 속죄할 기회를 여러 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아미르가 하산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속죄하였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그 기회마저 탐욕스러운 어른들에 의해 박탈당한 아미르는 평생을 죄의식에 사로잡혀 세월을 보냈다. 라힘 칸의 말따나마 아미르는 열두 살일 때도, 그리고 20년이 넘어서도 자신한테 너무 가혹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작년에 국제뉴스에서 크게 다뤘던 내용 중 하나가 바이든이 아프칸에서 미군 철수를 결정했고, 탈레반이 아프칸을 재점령했다는 뉴스이다. 90년대 후반 탈레반에게 아프칸의 아이들과 여성들이 받았던 고통과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는 제자리이다.
하나의 소설이 세상을 바꾸거나, 전쟁과 폭력을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독자들에게 아프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숨쉬고 있고, 나의 친구나 가족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작년에 그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냥 활자를 읽는 수준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뉴스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는 활자 하나하나가 마음을 때리는 느낌이다. 탈레반의 재점령 뒤 국경을 넘는 아프칸 사람들에게 물과 빵을 건네주고 싶고,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다.
로맹 가리나 커트 보니것이 묘사하는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그 후유증은 아직 존재할지라도 전쟁 자체는 종식되었다. 그러나 아프칸의 비극은 계속 되고 있다.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2003년에 본인이 쓴 소설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와 아프칸 사람들 그리고 아미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