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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Jan 05. 2024

2023년 회고

A year in review

 

올해의 회고를 쓰기 위해 한 해를 돌아보다가 잎새에게 말했다. “재미없다.” 잎새가 대답했다. “나도 재미없어.” 같은 마음이었다. 내보내기 위한 회고를 하려고 생각하니 영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잎새만 볼 수 있는 회고를 쓰기 시작했다. 보여주고 싶은 말 대신 하고 싶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 올해의 회고는 재미가 없는 걸까? 나는 올해의 내가 재작년의 나보다는 물론이고 작년의 나보다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올해에는 회고를 하며 짜잔 드러내고 싶을 만큼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없었다. 연말이 되어 축하를 하고 싶을 만한 ‘주요 프로젝트’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일상이 뚝 종료되거나, 1월 1일이라고 새로운 결심이 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회고를 쓰고 있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을 기점으로 대단한 회고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올해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았다. 내가 몰입(flow)의 상태를 언제 경험하는지 인지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몰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더 나은 환경에 자주 나를 노출시켰다. 잎새가 엊그제 놀랐다고 말한 그래프와 같이 이런 마음으로 사는 날이 지속되어야 흔히 말하는 엎어진 J커브를 그리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지금의 과정을 2023년의 회고로 일단락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2024년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의 책


회고가 재미없다고 적기 시작하니 회고가 조금 재미있어졌다. 작년처럼 올해의 책을 적어본다. 올해에는 87권의 책을 읽었고, 반 정도를 끝까지 읽었다. 경영서적 중에서는 에드 캣멀의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자기 계발서에서는 〈Atomic Habit〉을 읽으면서 자주 밑줄을 쳤다. 한국 SF 소설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과 외국 SF 소설 아서 C.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를 보며 감동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순식간에 읽었다. 작년부터 여행을 갈 때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Gold〉를 들고 간다. 올해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지 궁금하다.

올해의 팟캐스트


이동할 때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WorkLife〉, 〈How I Built This〉, 〈Wisdom From The Top〉, 〈People I (Mostly) Admire〉, 〈Fresh Air〉, 〈Conan O’Brien Needs a Friend〉를 자주 듣는다. John Mackey, John Green, Rick Rubin, Lisa Kudrow, Ed Catmul, Ted Chiang, Mark Ronson의 에피소드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올해의 유튜브


유튜브를 보았다. 〈Vox〉, 〈TED〉, 〈Crash Course〉, 〈WIRED〉의 교육적인 콘텐츠도 좋았지만, 일 이야기를 하는 〈개발바닥〉, 〈데모데이〉, 나영석 PD의 라이브도 즐겨보았다. 올해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정도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2023년 1월 1일에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보고 크게 감동했는데, 그보다 감동적인 영화가 열두 달 동안 없었다. 뒤늦게 본 〈바이스〉나 다시 본 〈굿 윌 헌팅〉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올해의 프로덕트


올해 ChatGPT를 아주 잘 사용했다. 이미지와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싶어 9월부터 Bear 대신 노션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Duolingo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Calm으로 명상을 NRC로 달리기를 했다. 세션즈와 함께 성장했다. 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대방이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1차적인 인상을 확인하는 것을 너머 2차적인 피드백을 고민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고민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또 어느 정도는 즐거워졌다.




소비한 것들만큼 생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회고가 재미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획서를 쓰고, 세션즈를 진행하고, 글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소비한 만큼의 임팩트를 내지 못했다. 회사에 가고 싶다고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소비하는 프로덕트의 질만큼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프로덕트의 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 리베카 솔닛의 말을 자주 떠올린다.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 모험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은 되었는데, 모험을 먼저 떠날 정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어떤 모험을 떠나고 싶은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2023년은 떠나고 싶은 모험을 알아챈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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