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하나 소셋 Feb 22. 2024

스트레스와 술버릇

술버릇은 죽어서도 못 고친다는 속설은 틀렸음을 증명하는 나의 경험담

아빠는 막걸리파 엄마는 소주파였다.

아빠는 1일 2병, 엄마는 1일 1병을 거의 평생 정량으로 드셨다. 

나는 엄마아빠의 음주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여자이지만 술을 꽤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편이다.

회식할 때 술을 못 먹는다고 하는 순간 왠지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술버릇이 있다.

내가 인정하긴 싫지만 사람들이 말해주는 술버릇이 있다. 지금은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진다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말해주는 술버릇이 세월이 감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다. 

20대에는 너무 웃어댄다고 했다. 30대 때는 조금만 취해도 운다고 했다. 그리고 40대에는 특별히 버릇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없었다. 지금은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바뀌었나? 무심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어느 날, 후배 여자 직원과 술을 먹고 있는데 그 여직원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 울기 시작했다. 

30대 후반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여직원이고 나와는 다르게 기술직이었는데 우리 회사는 기술직 여직원은 더욱 비중이 적다 한 5% 미만이다. 그만큼 관심도 집중되고 동료나 선배가 없어 직장생활이 아마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교육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 직원과 처음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이었다.


그 직원이 술을 마시다가 울기 시작했다. 정말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생각 안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린 순간 '아, 나도 30대 후반쯤에는 술버릇이 우는 거였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했었는데!'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은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울지 않는다.

이상하다. 술버릇은 평생 못 고친다는데 나는 왜 술버릇이 바뀌었지? 


내가 술만 먹으면 울었던 그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봐주시겠다던 시어머님은 출산휴가가 끝나기 한 달 전 도저히 아이를 볼 수 없겠다 선언하셨다. 

믿을 구석은 친정엄마 밖에 없었다. 

이미 언니의 아이, 나의 조카를 봐주시고 계셔서 차마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엄마에게 "이만 저만 하다"라고 울면서 전화를 하니 두말도 않고 "데리고 내려와라" 하셨다.

그래서 생후 2개월이 된 큰아이를 원주 친정에 맡겨두고 주말마다 내려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올라오곤 했다.


아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때 운 좋게 집 앞 구립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아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다.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 어린이집 보내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에 있어 다닐만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비서실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ceo는 8시에 출근을 했고 나는 그보다 먼저 출근을 해야 했다.

구립 어린이집이라서 다행히 7시 30분에 문을 열었지만, 내가 8시까지 출근을 하려면 거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고 나는 백 미터 달리기를 하여 지하철을 타야 했다.

출근도 출근이지만 퇴근도 문제였다. ceo가 갑자기 퇴근을 8시 넘어하는 날이면 나는 중간에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다시 회사로 와서 탕비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8시까지 있어야 했다. 어린이집이 7시 30분에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정말 숨 막히게 아슬아슬한 하루하루였다.  어쩌다가 진짜로 어쩔 수 없이 내가 남아있지 못하겠는 날에는 결혼을 안 한 직원에게 나의 일을 맡기고 퇴근을 먼저 하곤 했다.

내 몸이 힘든 것 보다도 나는 그게 더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그 후배는 고맙게도 걱정 말라고 항상 나를 안심시켜 줬지만, 내가 할 일을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너무 심했었다.


나의 우는 술버릇은 그때 시작되었다. 

내 기억에는 비서실 회식 자리였었던 것 같다. 

그 후배 여직원하고 화장실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삼십 분을 울었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내가 정말 미안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너에게 부탁해서 미안하다.' 였다고 한다. 

그렇게 물꼬를 튼 눈물은 술이 그 시작 버튼을 눌러 술만 마시면 울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나누는 말이 어찌 그리 다 서운하고 야속하고 속상하던지....




세월이 흘러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새 아이들은 크고 나에게 조금의 여유로움이 생겼을까?

어느 날부터 그냥 갑자기 그 우는 버릇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중간관리자쯤 되었을 때이고 아이들은 고등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즈음 그 여자 후배가 술을 먹고 우는 것을 보고 알았챘다. 

삼십 대에 나에게 있었던 그 술버릇은 죽을 만큼 힘들어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고 있을 때 술이라는 도구가 나의 이성을 잠시 멈추게 하여 그 틈을 비집고 표출되는 살려달라는 외침이구나.. 하고 말이다.

지금 저 후배도 나의 30대처럼 치열하게 죽을 만큼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고 살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세상이, 조직이 많이 여성친화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아직 멀었다.

여전히 아이를 낳는 여성들은 육아가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그 남편들은 큰맘 먹고 휴직을 1년 내고 육아를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육아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무언가 결정적인 순간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여성이다. 

쉽게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또 술잔을 기울이며 울던 그 후배처럼 우리가 꿋꿋이 잘 버텨내고 조직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가는 날이 오면, 조직문화가 조금씩 바뀌어 십 년, 이십 년 아니 오십 년쯤 뒤에는 술 먹고 눈물바람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잘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날,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대충, 정확히 그리고 빠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