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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07. 2023

6년 만에 엄마는 한국으로

새벽 3시 반으로 알람을 맞추었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한다고 긴장을 하니 오히려 눈은 더욱 말똥말똥해졌다.  목소리가 거칠어지지 않으려면  몇 시간이라도 자야 한다는 중압감이 늘 있지만 내가 원하는 짧은 시간의 숙면에는 빠져들 수 없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알람소리가 크게 울리자 나의 몸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6년 만에 엄마가 한국으로 나가시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에는 한국으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다. 죠지아, 뉴욕, 혹은 텍사스 등 다른 큰 주로 국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국으로 가는 직행 비행기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이 안좋아진 엄마가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부부가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한 것이다.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재촉하는 전화가 왔다. 왜 안 오느냐고! 오고 있느냐고! 전 날 분명히 4시 15분까지 엄마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요즘 점점 더 기억력을 잃어가는 엄마는 한국으로 가는 날이라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거의 밤을 새우고 컴컴한 새벽에 밖에 나가서 기다리신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 몹시 그리우셨던 거란 생각이 스쳤다.


부랴부랴 서둘러 나갔다. 깜깜했다. 엄마집에 가는 동안 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역시 미국이구나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싣고 바로 출발했다. 해가 뜨려면 먼 시각인데도, 아침을 먹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챙겨 온 빵과 음료를 먹으라고 자꾸 권한다. 그리고 가스비하라고 백 불도 주신다. 한국 가서 용돈 하라고 하니까 당신은 쓸 일이 없다며, 나이 드니 돈도 필요 없다며 강하게 거절한다. 기분이 착잡해졌지만 그래도 웃자고 또 웃자고 다짐했다.


버지니아 공항까지는 5시간 정도면 충분한 거리인데 해가 뜨고 7시 반쯤 되자 차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트래픽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일리지는 고작 1마일이 줄어드는 반면 도착 예정시간은 십 분 이상이나 지연되고 있었다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는데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될 정도였다. 우리는 마음을 졸이며 구글에서 주는 덜 막히는 길을 찾아 계속 가고 있는데 엄마는 뒤에 앉자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언제 도착하느냐고. 얼마나 남았느냐고.


인터넷에서 읽었던 치매 증상,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치매 증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더욱더 싫어질 뿐이었다. 먼저 엄마의 치매가 시작되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  잘 안된다. 머리는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의 속도는 너무도 느리다. 속만 부글부글 탄다.


체크인을 하면서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했다. 엄마는 치매 초기단계이고 다리도 아프다고 말했다. 얼마 후 한국인 공항직원이 나와 혼자 여행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사실 엄마는 지난 5월에 나와 함께 한국으로 가려고 했었으나 일정을 조절할 수 없어 홀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연로하신 엄마를 혼자보내도 되느냐고 묻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걷기가 불편하니까 휠체어 서비스만 원한다고 대답을 한다. 정말 이럴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공항직원은 엄마에게 알았다고 미소를 보낸다. 나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잘 돌봐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내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가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그제야 안심을 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카톡으로 들으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    


엄마! 잘 지내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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