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원 Jan 11. 2024

애써 웃었던 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별하는 장면에서는 늘 애써 웃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시청자의 입장으로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별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로는 준비한 이별을 맞이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이별이 훨씬 더 많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어릴적부터 이별을 경험한 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이별이 있다. 바로 중국에서 맞이한 엄마와의 두 번째 이별이다. 엄마와의 첫 번째 이별은 내가 9살 때 행방불명 됐던 것이고, 두 번째 이별은 약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엄마가 북한으로 북송되면서 맞은 이별이다.  

    

동생을 데리러 국경으로 가던 그날 엄마의 들뜬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생까지 데려오면 완전체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엄마의 마음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며칠만 (핏줄이 다른) 동생과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가 얼른 동생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들뜬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나는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가는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지 알고 있었고, 왠지 모를 불안함이 나를 압도해왔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엄마의 마음이 무겁지 않게 애써 웃으며 동생과 잘 지내고 있겠다고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의 불안한 마음은 엄마의 북송이라는 믿기 힘든 현실이 되오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 갔던 새아빠만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직감했다.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제발 내 예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새아빠에게 엄마의 북송을 확인해야만 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중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엄마는 북송되었다. 어쩌면 태어난 고향인 북한에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북송 당시 엄마에겐 그리운 고향이자 가장 두려운 곳이기도 했을테니까.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면 하나같이 불쌍하고 아픈 과거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아프고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낸 주인공들의 결말은 늘 해피엔딩이다. 어쩌면 현실과 드라마 속 삶이 가장 다른 것은 바로 해피엔딩이 아닐까.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해피엔딩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능하니까. 이유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아픔과 사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때로는 아픔으로 얼룩진 삶이 나를 억누르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니까. 나의 삶도 그렇다. 지금의 인생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긴 이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애써 웃으며 이별했던 엄마와의 재회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의 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애써 웃으며 이별했던 그날이 마지막 인사일 줄 알았더라면 꼭 안아드릴걸.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할 걸. 많은 후회가 들지만,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는 없기에 다시 만나게 될 그날까지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길 멀리서나마 기도할 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다시 만나게 될 그날에는 애써 웃는 웃음이 아닌 햇살 가득 머금은 행복한 미소로 맞이할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너그러운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