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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Apr 28. 2023

나 같은 사람도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구멍(opening)- 인생 첫 소개팅

어릴 적 만화책 읽는 걸 좋아했다.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도 재밌었지만  취향은 역시 순정만화다. 춘기 즈음엔 가슴 저릿한 연애소설을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인생에도 이런 로맨스가 있었으면……. 하지만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실감각 내 발목을 붙잡았다. 과연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배우자상을 얘기할 때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구김살 없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말. 안타깝게도 나는 여기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구김살이 없뇨? 링클프리는 옷 얘기 아닌가요). 렇다고 이 모든 것을 커버할 만큼의 미모나 재력을 겸비한 것도 아니,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4년 만난 남자친구와 을 때였다. 이제는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 내가 결혼하고 싶은 남편상에 대해 다이어리에 적어봤다.


1. 종교적 가치관이 맞는 사람(우리 부모님의 이혼사유니까)

2. 여자 문제로 속 썩이지 않고 나만 사랑해 주는 사람

3.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4. ...


그래,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어디에 까? 가상의 남편을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27살 때쯤 결혼하고 싶 생각 들었다(그때 24살이었). 그렇게 치니까 '어?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네? 나는 결혼할 준비가 전혀 안 됐는데?' 싶어서, 우스운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 혼자 아내가 될 준비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저축을 열심히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 하던 이불 정리도 하고, 방청소도 자주 했다. 결혼해서 밥 해 먹고살려면 요리할 줄 알아야겠네, 해서 혼자 블로그를 보며 요리를 시작했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여 짜잔, 하고 기껏 떡국을 끓 기특하다는 칭찬은커녕, 먹지도 않는 떡국은 왜 끓였냐고 핀잔주는 할아버지 때문에 잠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쉬운 요리부터 차근차근 시도해 나갔다. 혼자만의 신부수업이랄까. 나는 알아서 척척 잘하는, 척척박사님 스타일이니까!(뿌듯)


내가 이렇게 했던 이유는 한 가지 생각이 들고나서부터였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양쪽 모두 그런 마음이라면, 결국 나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꼭 경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만나게 될 거란 결론에 이른 것이다. 나와 비슷한 남자라고 생각하니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이  것이다.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나도 그만큼 멋진 여자가 돼야 하는 게 인지상정일 테니까.




"야, 오늘 소개팅할래?" 

월요일 오후였다. 안 그래도 바쁜 날이었는데 친구는 오늘 아니면 안 된다며 당일 저녁 8시 약속을 잡아버렸다(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라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머리 만질 새도 없이 옷만 서둘러 갈아입다. 에이, 오늘 한번 보고 말겠지 뭐. 그렇게 얼렁뚱땅  소개팅을 나가게 됐다.


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검은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평소 운동을 하는지 팔이 꽤 다부져 보였다. 아마 소개팅을 여러 번 해본 사람이라면 '오늘 소개팅은 성공적인데?'라고 생각할 만한 훈남 스타일이었다. 말도 잘 통하 분위기 화기애애하고. 그러다 문득,  집안사정을 다 알고 나서도  분위기가 유지될까 궁금해졌다. 처음 만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불리한 패를 전부 발리기로 했. 내 조건이 부담스러우면 빨리 도망가라, 이 마인드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엄마는 얼굴도 몰라요. 아빠는 알코올중독이어서 2년 전에 간경화로 돌아가셨 평생 일을 안 하셨어요.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고 있는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문대를 갔고 공무원으로 직장생활하다가 지금은 편입해서 대학교 다니고 있어요." 


소개팅보통 자기 매력을 뽐내는 자리인데  나는 단점만 줄줄이 늘어놓 됐다. 아무튼 걸릴 만한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생각보다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 저희 부모님도 자주 싸우셔서 많이 속상했는데."라며 덤덤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됐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그가 집에 데려다줘도 되냐고 물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헤어지자마자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이 너 엄청 마음에 드나 봐. 자기한테 과분한 사람이래." 음.. 그런 얘길 했는데도 괜찮다는 말이지?


그 후로 우리는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 만난 지 3주쯤 된 것 같은데 이 남자. 어째 사귀자는 말이 없다.


"근데요. 왜 나한테 고백 안 해요?"


내 질문 당황스러웠는지 그가 사레에 렸다. 물을 마시 잠시 숨을  윽고 자신의 이야길 꺼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지금 직장 다니게 됐다고 다. 저축을 하고 있지만 월급이 은 것도 아니고, 결혼할 때 부모님께서 돈을 보태주실 수 있는 형편도 아니라고. 그에게 결혼은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주변 사람들이 결혼준비 경제적인 문제로 다투는 걸 보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혼을 못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혜원 씨는 저보다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공무원이고 학벌도 좋니까. 제가 혜원 씨한테 사귀자고 하면 왠지 길을 막는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그는 나의 구멍이 아닌, 자신의 구멍을 본 것이다. 전문대졸이라는 학력, 하루 걸러 하루 다투시는 부모님,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까지. 어릴 적 빌라 반지하에 살았는데 윗집에서 변기 물을 내리면 자기 집 변기물이 역류해서, 흘러넘치는 똥물을 퍼내느라 엄마도 울고 자기도 울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볕이 잘 드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라고 했다. 


고깃집이라 분위기가 시끌벅적했지만 그의 눈을 맞추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번 내 얘기에 그가 그래줬듯이.


나는 그의 다정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와 다르게 내 말을 경청해 주는 것도 다. 내가 "직장에 다니는 건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고 싶어요."라고 대답면 실망했을 것 같은데 그는 "힘들 때도 있지만 재미있어요. 더 잘 해내고 싶어요."라고 했다.  아빠와 달리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술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다. 많이 벌진 못해도 많이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OO 씨보다 능력 좋은 사람, 집안 좋은 사람. 세상에 많이 있겠죠. 근데 그런 사람들이 다 나를 좋다고 해도 나는 OO 씨가 더 좋아요. 나는 당신하고 만나고 싶어요." 그가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 후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가 우리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공원 쪽에 다다랐을 때쯤 핸드폰all for you 노래를 틀더니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사실은 말이야. 나 많이 고민했어.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걸.
아주 많이 모자라도 가진 것 없어도
이런 나라도 받아줄래.
너를 위해서 너만을 위해서
난 세상 모든 걸 다 안겨주지는 못하지만
난 너에게만 이제 약속할게.
오직 너를 위한 내가 될게.

- all for you, 쿨 -

 

"이 노래 가사처럼 나는 많이 부족한 남자예요. 그래도 혜원 씨만 괜찮다면 오직 혜원 씨만을 위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내 여자친구가 돼줄래요?"


그의 고백에 나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 그도 자신의 빛나는  먼저 봐주는 사람을 만났다.  배경보다 나 자체를 유심히 는 사람. '과거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는 '현재의 나' 초점을 맞추는 사람. 랫동안 가던 불안을 안심시켜 주는 사람. 남들 눈에는 부족해 보일지라도, 내 눈에는 최고인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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