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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Mar 22. 2024

날 찾아온 게 혹시 제 '간' 때문이었나요?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처럼

공효진이 나오는 드라마는 웬만하면 다 좋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고, 주인공이 평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게 마음에 든다.


'동백꽃 필 무렵'도 그런 드라마 중 하나다. 주인공인 동백이 7살 때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원에 갔지만, 모진 세월을 기특하게 잘 견뎌내고 어엿한 8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엄마 없이 자란 동백이의 삶이 나랑 비슷하다고 느껴서인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내 옆에 눈물 콧물을 닦은 휴지 더미가 수북이 쌓여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동백이 엄마가 동백이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몇 달 뒤에 우리 엄마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내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울었던 게 모두 이 드라마 때문이었데, 드라마가 정말 현실이 되다니...!


모든 게 재회를 위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찾아오면 어떨까' 상상해 본 것도, 동백이와 엄마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한 것도, 나도 동백이처럼 살고 싶단 희망을 품은 것도, 마치 온 우주가 엄마와의 화해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원래 엄마와 처음 만나기로 한 건 5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에게 일이 생겼다며 만나는 날을 앞당기자고 했다. 내가 그럼 천천히 보자고 말했더니, 엄마는 빨리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며 4월 초에 보자고 했다. 심스레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으니 엄마가 대답을 얼버무다. 말하기 불편한 상황인가 싶어 더 이상 캐묻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이상한 소릴 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하고 싶은 것들 다 하면서 살려고."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으니 또 두루뭉술하게 대답한다.


"그냥. 사람은 원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잖니.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그런데 그 뒤로도 뭔가 수상쩍게 구는 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얘기를 안 해준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니 횡설수설하며 말을 빙빙 돌다가 결국 마지막에 내뱉은 말이 '간암'이었다. 자기가 간암 초기라고. 가족력도 있어서 외할머니, 외삼촌 등 외가 쪽 식구들이 간 문제로 많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처음엔 그냥 등이 아팠는데 동네 정형외과도 가보고 대학병원까지 가서 검사를 해봐도 아픈 원인을 몰라 답답했 했다. 그런데 문득 가족력이 떠올라 간 검사를 세히 해보니 그제야 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마는 피검사에서조차 발견 안될 정도로 초기니까 걱정할 것 없다면, 어떻게든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수술 날짜가 5월 초로 잡혔던 것 같다. 수술 후 회복하는 기간도 필요할 테니 엄마 입장에서는 만나는 날을 언제까지 뒤로 미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수술이 잘못되면 나를 못 볼 수도 있는 거니 수술하기 전에 빨리 보자고 재촉한 게 아닐까.


제야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 재회의 결정적인 사건은 간암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버킷리스트처럼, 죽음을 앞두고 자기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 가슴속에 숙제처럼 남아있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를 만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동안 왜 숨긴 거냐고 물으니,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을 안 한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엄마는 솔직했어야 했다. 나에겐 엄마에 대한 오랜 불신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주 작은 거짓조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해줬더라면 엄마 말을 다 믿었을 텐데, 이제는 '나를 위한 배려'였단 말로 또 무얼 숨기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엄마는 나와 연락한 뒤에 우연히 간암인 걸 알게 됐다고 했지만, 그 말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이미 나에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한테 간을 떼 달라고 찾아온 건가...? 동백이 엄마처럼?' 내가 이렇게 또 뒤통수를 맞는 건가 싶어, 나도 모르게 뒤통수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간암 치료법에 대해 검색해 보니 역시나  이식도 포함돼 있었다. 설마 염치없이 그런 부탁을 할까 싶으면서도 하필 이 시점에 찾아온 걸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사실 드라마에서 동백이 엄마 이식받으러 온 게 아니라 사망보험금을 주러 온 거였지만, 우리 엄마 의도는 뭔지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간이식을 부탁하러 온 건지, 아니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나를 보고 싶었던 건지……. 엄마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엄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간 이식 공여자의 조건, 수술 후 후유증에 대해 검색해 봤다. 수술을 하고 나면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하고, 다른 후유증들도 무섭게 느껴진다. 나에겐 키워야 할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아무래도 간이식은 안될 것 같다. '혹시나 엄마가 부탁하면 거절해야지.'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른 의심들에 대해서도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고모들에게 엄마가 찾아왔단 소식을 전하니, 앞으로 내가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엄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다.

"이제 늙고 병들 일만 남았으니까 널 찾아온 거지."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한테 피해 줄 일은 없을 거야. 혹시 잘못되더라도 간병해 달란 부탁은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동백이처럼 해피엔딩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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