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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Apr 22. 2022

1 RM


투명의자에 앉는 느낌으로 엉덩이 쭉 빼고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을 스쾃이라고 한다. 여기다 양쪽 몇십 킬로그램 원판 추를 단 쇠막대 ‘바벨’을 메고 하면 바벨 스쾃이 되고, 이 무게를 얼마나 버티느냐에 따라 운동 강도를 지표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근력운동 세 가지의 이러한 무게를 다 합쳐 3대 삼백이니 오백이니 하는 말이 나온다. 오백이라하면 전설 같은 경지이고, 삼백만도 거룩한 지향점이다. 좀전에 묘사한 바벨 스쾃을 백 킬로쯤 버텨야 한다는 건데, 쇠막대 양쪽에 중고등학생 둘을 매단 정도다. 두 아이 기르는 부모의 중압감에 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참말로 물리적인 괴력이 필요하다.


이 무게를 들고 아이 뒷바라지하듯 오랜 시간 버티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딱 한 번, 바른 자세로 들었다 내리면 기록으로 인정된다. 트레이너의 보조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최대치(RM, Repetition Maximum)를, 그러니까 겨우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1RM)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위태롭다. 서서히 올려가다보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 무게와 마주해야 할테지. 십자가를 멘 예수님처럼, 자녀들의 안위를 짊어진 어버이처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도전 앞에 힘과 요령을 쥐어짜내는 일은 얼마나 두렵고 고독할까.


도움 주는 이가 없거나 숙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두세 번 안정적으로 한 것(2RM, 3RM)으로 한 번의 최대치를 가늠하기도 한다. 가령 45킬로그램을 3번 들었으면 48킬로 한 번 든 셈 쳐주는 식으로, 공인된 환산 계산기가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런 계산기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누구도 다음 회차를 위해 힘을 남겨두는 식으로 현재를 살진 않는다. 언제나 최대치로 한 번, 1RM이다.


큰시누이의 큰딸은 대학 재학 중에 결혼을 했다. 어린 신부가 자기보다 어린 신랑과 함께 일찍이 아들 딸 낳고 살았다. 시어머니 국수가게 도우면서, 시아버지 병 수발하면서 힘껏 살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우린 누구라도 그렇게 하니까. 조카보다 겨우 다섯 살 많은 외숙모인 나도 열심히 사느라 우리는 교제가 잦진 않았다. 그런 조카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가족들만 모신다는 재혼식이었다.


그간의 내막은 모른다. 순백의 새신부에게 그런 것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훤칠한 새 신랑이 주례사 대신 깜짝 편지를 써와 들려주었고, 마주 선 조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 시커먼 마스카라 얼룩이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 둘째를 시켜 손수건을 건넸을 뿐이다. 그리고 힘차게 축하해주었다. 다시는 하지 못할 일인양 최대치로 그렇게 했다.


박수와 부조 외에 한 것이 있다면 조금은 불편하고 근사한 정장 차림을 해간 것이다. 신부측 가족의 위용을 갖추느라 남편은 오랜만에 타이도 맸다. 내가 입은 원피스는 몸매가 드러나는 머메이드 라인에, 무릎께 튤립 모양 치맛단이 살랑이는 디자인이었는데 정확하게 종아리 근육이 드러나 보여서 조금 난감했다. 하이힐까지 신었더니 압박 스타킹을 신어도 알다리가 튼실해서 원하는 실루엣이 되질 않았다. 바꿔 입을까도 생각해봤으나 이내 관두었다. 힘차게 산 나의 흔적이 어때서. 운동이든 삶이든 버틸 수 있는 만큼 겁내지 않고 도전해오고 확장해온 나의 결실이다. 단 한 번인 양,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인양 어깨에 짊어진 것을 바르게 들어올리려 애썼다. 물론 겁에 질려 내려놓을 때도 있고, 더 나쁠 때는 그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짓이겨진 자리에조차 굳은살이 박이고, 속으로는 근섬유가 갈라져 근육이 부푼다. 벌크 업의 원리다. 그렇게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단단해져 간다. 어질고 야문 남매를 낳았으니 실패라고도 할 수 없는 첫 결혼을 딛고 조카는 더 묵직해진 다음 무게에 도전한다. 사는 것은 언제나 새 날에 새 기록을 새기는 일이므로, 마지막인 듯 최대치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뭍을 끌어안고자 한없이 팔을 뻗는 파도에서 어느 시인은 굵은 힘줄을 보았다 한다. 떡 벌어진 어깨 저만치서부터 실어 보낸 힘이 육중하게 밀려온다. 안간힘을 쏟은 기합 소리가 하얀 포말로 부서져 백사장을 뒤덮는데, 바다는 지치지도 않고 다시 팔을 당겨 다음 내뻗기를 준비한다. 그 동작에 망설임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운동은 결국 중력과의 싸움인 즉 이는 지구와의 밀고 당기기요, 우주와의 드잡이다. 바다도, 조카도 운명 같은 우주의 힘과 겨루느라 최선을 아니할 수가 없고, 자조 같은 걸로 시간 낭비할 겨를이 없다. 그 모든 치열함에 경의를 보낸다.


역기 같은 걸 들고 서서 무릎 아래로 내렸다가 일어서는 운동은 데드리프트다. 예의 3대 운동 중 하나이고 가장 힘들기로는 1등, 가장 짧고 굵은 효과 보기로도 최고다. 어제 새 기록을 갱신하면서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고심했다. 원래는 죽은 듯(dead) 미동없이 늘어진 것을 들어올린다(lift)는 뜻이라지만, 죽음 그 자체가 땅에 닿지 않도록 끌어올리는 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싶었다. 마지막 순간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 오기 전까지 지구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우주가 이끄는 산화의 역순으로 죽음을 끌어당긴다. 삶이 그만큼 더 달려오리라.


무거운 바벨을 놓칠까 싶어 악력이 부족한 나는 손목에 스트랩을 감아서 쇠막대 손잡이에 고정시켰다. 다음 날 허리 뻐근한 것도, 어깨 다리 뭉친 것도 둘째고 손목에 줄 쓸린 곳이 제일 아프다. 영광의 벌건 팔찌를 찼으니 오늘은 7부 소매를 입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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