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이 나에게 건넨 시선(3)
(*스포경고* 글의 내용이 '소년의 시간' 1화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소년의 시간' 1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한 가정집에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경찰관 한 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무장경찰이 문을 무수고 들어오죠. 경찰들은 2층에 잠을 자고 있던 13세 소년 제이미를 살인혐의로 체포합니다. 체포 후에도 남은 경찰들은 제이미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집을 뒤집니다. 이후 경찰서에 간 제이미는 구금 절차를 거친 후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이 회차를 통해 제작진이 보여주고 싶었던 불편함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짚어보고 싶은 부분은 경찰들의 행태였습니다. 경찰들은 13살의 제이미에게 성인들에게 하는 동일한 과정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제이미의 아빠는 제이미가 13살임을 강조하죠. 경찰들은 제이미를 위한 과정들이니 협조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경찰이 자신의 일을 하는데 우리는 왜 미묘하게 불편감이 들었던 걸까요? 경찰들은 살해 용의자라 하더라도 13세 소년에게 그토록 엄격하게 공식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했던 걸까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공무원’, 즉 관료제도는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도시화와 사회 문제의 복잡화로 인해 국가가 담당해야 할 행정 영역이 점차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행정 운영 방식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관료제(Bureaucracy)를 근대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조직 형태로 보며, 이를 법적-합리적 지배 유형에 기반한 이상적 행정모형으로 이론화하였습니다.
물론, 관료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지만, 오늘은 이 가운데서도 막스 베버가 강조한 ‘법에 의한 관리’의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베버는 관료제의 핵심 특징으로, 모든 행정은 명확한 규칙과 절차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관료의 직무와 권한 배분, 자격 요건 등은 법규에 의해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행정은 사적 감정이나 자의적 판단이 아닌 법적 기준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 사회에서 확립된 법치주의(rule of law)의 원칙과 깊은 연관성을 갖습니다.
법치주의(rule of law)는 사람이 아닌 법(法)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모든 권력 주체가 법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근대 입헌국가의 통치원리입니다. 이러한 법치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절차와 체계 준수를 강조하는 형식적 법치주의(Formal rule of law), 또 다른 하나는 내용과 목적을 강조하는 실질적 법치주의(Substantive rule of law)입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성립한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신헌법 체제입니다. 막스 베버가 말한 관료제에서 공무원은 법과 규칙에 따라 개인의 감정을 배제한 채, 절차적으로 일관되고 공정하게 행정을 수행해야 하며, 이는 관료제가 형식적 법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법규에 기반한 행정은 단순한 절차 준수를 넘어, 행정 권력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실질적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행정은 단순한 규칙 집행을 넘어서야 하며, 상황에 맞는 판단과 인간적 고려가 포함될 때 비로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공무원들은 모두 형식과 절차에 매몰되어 업무를 할까요? '소년의 시간' 1화에 나온 경찰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소년의 시간' 1화에서 경찰들은 단순히 무감정한 법 집행자로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소년이 체포되고 조사되는 과정에서 경찰들 역시 불편한 감정과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합니다. 그들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사이에 갈등이 존재합니다.
공무원들이 겪는 대표적인 딜레마는 법과 정의 사이의 딜레마, 감정과 규칙 사이의 딜레마 같은 것들이죠. 예를 들어 법적으로는 철거 대상인 무허가 건물이 있는데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고령자 거나 취약계층일 경우라던가, 소년의 시간 1화에서처럼 아동을 체포해야 하는 상황이라던가 하는 경우 공무원 역시 법과 규정에 따라 감정을 배제하고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념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직자들의 딜레마는 지난번 이야기 했던 아이히만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무원이 아이히만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에서 공무원들이 절차적 법치주의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책임 구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무허가 건물의 철거 기한을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연기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A 지역에서는 고령자나 취약계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칙대로 철거를 진행하고, B 지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예해 주었다면, 시민들이 느낄 형평성은 어떻게 될까요? 또 어떤 공무원이 시민들에게 더 유익할 거라 판단해 추가 예산을 투입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공무원들은 때때로 규칙과 현실 사이에서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 판단이 곧 책임으로 이어지는 구조 안에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 항상 쉬운 일만은 아니랍니다.
행정학자로서 저는 늘 조직 개편이나 인사 제도 개편과 같은 변화의 흐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과연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는 ‘관료제’라는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디지털 사회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분절적인 조직 구조나 지금의 법체계가 가진 한계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명쾌한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만약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소년의 시간' 1화를 보며,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과 고민이 단지 드라마적 연출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제이미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공무원들의 입장도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년의 시간'은 전 화를 통해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질문 앞에서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여러분 각자의 시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작은 잣대 하나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소년의 시간'을 보며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