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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욱 Jul 10. 2021

고시원 표류기, 치즈 한장 크기 햇살

나혼자산다#3

대학시절 고시원에 살았다. 타지생활을 하면서도 학점이 좋지 않아 기숙사에 떨어져서였다. 하하하. 당시 고시원 창문이 있는 방은 2만원이 더 비쌌다. 창문이 없는 고시원 방은 불을 끄면 칠흑같은 어둠이 내렸다. 어둠이란 본래 무게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마음을 짓누르는, 답답하고 그동안 없던 막막한 마음도 생겼다. 검은색 딴딴한 두부같은 어둠이 가슴으로 그대로 허물어져 내려버릴 것 같은 공간. 마음에 곰팡이가 슬어버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결국 1년을 창문없는 고시원에서 살다가 2만원을 더 얹어 창문이 있는 고시원 방으로 옮겼다. 


창문은 A4용지보다 커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문을 열면 강아지풀이 햇살에 반짝이는게 보였다. 물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A3 크기만한 햇빛이 치즈 크기만큼의 크기로 변했다. 이제 형광등 불을 키고 나면 큰 상자안에 담겼다. 방음이 잘 안되는 골판지로 이어붙인듯한 벽을 사이에 두고 왼쪽 옆방에서 기침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벽이 양파껍질보다 얇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오른쪽 옆방은 얇은 고막이었다. 여자친구를 몰래 데리고 온듯한 옆방에서 애써 숨을 참다가 순간 탁 터지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날이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인류가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한 의욕 이전에 성욕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은 부모님이 고향에서 올라온다고 하셨다. 나는 오시지 않기를 바랬다. 고시원에서 사는 모습을 왠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야 고시원 내 방을 둘러보며 느꼈던 감정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덤덤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내 고시원 방문을 여는 순간, 부모님의 마음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누을 수 있는 침대. 옷가지들이 쌓여 있어 보기만해도 숨이 턱 막히는 풍경. 아주 작은 창문을 열어놓아도 환기가 잘 되지 않고, 방바닥부터 올라오는 쾌쾌한 냄새. 책상아래 널브러진 참치캔과 라면. 이런 곳에 살면서 아들이 곪지나 않을까 걱정을 여러번 하셨다고 한다. 내 고시원방 침대에 부모님이 짧은 시간 앉았다 일어나셨다. 3명이 있기엔 너무나도 좁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근처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시는데도 그냥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이 땡겼다. 순대를 먹으니 뭔가 슬픔이 물컹거리며 목구멍으로 들어오는듯했다. 고생에 찌든 부모님 얼굴과 힘없이 떨어지는 눈빛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뭔가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기에. 부모님은 내가 고시원 살 때를 떠올리며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이다. 긴 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건강하게 나아주신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날 순대국밥을 먹고 부모님은 다시 고향에 내려가셨다. 부모님과 포옹하고 떠나는 차 백미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의 차. 그때는 또 왜 이렇게 어깨가 축 쳐지신 할아버지쳐럼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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