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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Sep 11. 2021

“가장 가까운 존재=가족”이라는 등식을 붕괴시키며

영화 '케빈에 대하여'


영화 '케빈에 대하여'




형제는 수족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의복이 헤어졌을 경우 다시 새 것을 얻을 수 있으나,  
수족이 끊어지면 잇기가 어렵다.  
-장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을 신성시하는 그 관념은 우리의 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가족은 가장 근원적인 사회의 형태고 당신의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줄 곳이니,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집단으로 정의된다. 이런 가족의 속성 때문에 가족은 행복과 사랑을 담보해야만 하고, 다시 한번 우리는 이 약속된 신화를 얻기 위해 가족 사이에 감정적 공백은 존재할 수 없다고 외치며, 이것을 정상성이라 규정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을 욕하고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는 모습도 많이 보고, 패륜을 행하는 소식도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고는 하지 않는가. 우리의 통념이 쌓아온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어쩌면 신화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곤 한다. 영화 <케반에 대하여>는 이런 관점과 맥을 같이 한다. 엄마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자식을 사랑할 수 없었던 에바, 그리고 그런 에바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는 아들 케빈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책도 낼 정도로 꽤나 자랑스러운 업적을 이뤄낸 여행가 에바. 그러나 에바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임신으로 어머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에바는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아들과 자신의 모든 것을 맞바꾸게 되었기에 케빈을 사랑할 수 없었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에게 정당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법을 모르기에 에바를 괴롭히기만 한다. 둘 사이의 공백은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이 관계 속 공백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요점일 것이다. 시작부터 있었던 이 깊은 골을 메우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미워하는 법만 배워간 모자는 결국 서로에게 큰 죄을 안겨주고 만다. 케빈은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자신의 학교 친구들을 살해하고 교도소로 들어간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그리고 에바는 아들의 피해자들에게 모욕과 폭력을 당하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18살이 된 케빈은 성인 교도소로 이전되는 상황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언제나 불편하고 거리가 멀었던 두 모자의 독대. 그러나 이 장면만큼은 조금 다르다. 에바는 케빈에게 “왜 그랬냐”라고 묻고, 케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라고 대답한다. 에바는 그런 케빈을 꼭 안아주고는, 환한 빛이 쏟아지는 출구를 향해 간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이 영화는 속죄의 기록이다. 에바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흔적을 따라간다는 점 때문에 에바의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으나, <케빈에 대하여>는 양측 모두의 반성을 담는다. 영화의 포스터는 두가지 버전이 있다. 에바가 케빈을 놓고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나, 그리고 케빈이 에바를 놓고 “당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나.



영화 '케빈에 대하여'



  너무나도 서툴렀던 이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끝에 서로를 지옥으로 몰아 넣고 만다. 그러나 끝에 가서 서로 솔직한 감정을 묻고 답하게 되면서 그제서야 맞닿게 된다. 너무나도 먼 길을 돌고 돌아, 그 넓고 깊은 상처가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래도 어찌 온전하고도 맹목적인, 신의 사랑이 가능할까. 그것은 신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일종의 “공백”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 나쁠 것이 있을까. 공백이 있을지언정 서로를 바라보고, 애정으로 대하고자 노력하는 그런 태도, 이거면 되는 것 아닐까.






글 | 이의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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