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더 많은 지식과 감정, 욕구를 갈망하며,
인간은 그렇게 공백을 ‘채워가는’ 존재다.”
하지만 여기 한 예술가는 주장한다.
모든 존재는 ‘비움’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고.
1991년 영국 미술계의 최고상인 ‘터너 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예술가 카푸어.
가장 어두운 색인 ‘반타 블랙’의 소유자로도 유명한 그는
온갖 장식으로 작품을 꾸미기보다 차라리 텅 비우기를 택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Void> 연작이다.
기존의 조각이 ‘보는 작품’이었다면, 카푸어의 조각은 ‘체험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그의 작품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깊은 명상의 효과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반구형의 조형물은 언뜻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며,
금방이라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마치 기묘한 그릇처럼 생긴 작품 <Cave & Intersection>은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외부가 아닌 내부인데,
카푸어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어둠 속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조형물 속 끝없는 어둠을 마주하면 기묘한 공포가 느껴진다.
이른바 ‘숭고’의 감정이다.
숭고란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전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마주할 때의 경외심’을 뜻한다.
거대한 무한함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감각, 그리고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함.
사방이 끝없는 지평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서 있다면 비슷한 느낌일까?
우리는 텅 빈 어둠에서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결국 카푸어의 작품이 선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깊은 감각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건 ‘기교로 가득 찬 예술’이 아닌 ‘텅 빈 예술’이다.
또한 우리는 작품에서 그의 종교관을 볼 수 있다
카푸어는 ‘음과 양의 공존’과 ‘반대되는 것의 융합’을 중시하는 동양 사상에 심취해 있으며,
늘 ‘물질의 단계를 벗어난 세계’를 탐험해왔다고 말한다.
카푸어에게 안은 곧 밖이고, 비움은 곧 채움이다.
그의 조각은 ‘완전한 조화의 세계’를 담는다.
그렇기에 그의 예술은 정신적인 힘을 가지며, 물질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카푸어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텅 빈 조각을 우리 자신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삶의 부산물로 가득 차 있으며, 지극히 작은 부분에 골머리를 앓는다.
내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고 남과 경쟁하고 사소한 것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언제나 ‘채우는 것’에만 골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자.
덧없는 것들은 전부 쓸려 나가고, 광활한 무한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사람은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써 깨닫는다.
비움은 곧 가능성이며 힘이다.
카푸어는 실제로 매일 참선과 명상을 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도 한 번쯤은 자신을 비워보는 건 어떨까?
저 카푸어의 조각처럼 말이다.
글 | 강운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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