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원수 집안의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지워지지 않아. 아무리 당신들이 보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의 사랑을.”
-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中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당신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뒤에 감춰진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16세기 베로나. 그리고 딱히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베로나의 두 가문, 몬테규와 캐플렛. 이 두 가문에는 각각 로미오라는 아들과 줄리엣이라는 딸이 있다. 그런데 잠깐, 로미오에게 누나가 한 명 있다. 그녀가 바로 줄리엣 몬테규이다. 매일같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헤매던 줄리엣 몬태규는, 어느 날 우연히 캐플렛 집안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줄리엣 캐플렛을 만난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같은 이름, 그리고 같은 성별. 이 운명 같은 사랑 속에서 줄리엣과 줄리엣은 서로에게 사랑의 맹세를 속삭인다. 둘의 관계는 점점 깊어지고,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가문끼리의 원한도, 다툼도 없다. 하지만 오로지 하나, 성별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줄리엣 몬테규도, 줄리엣 캐플렛도 결국은 집안에서 맺어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 줄리엣 몬테규의 남동생 로미오는 누나의 사랑을 도와주고 싶어 하고, 이들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자신이 줄리엣 캐플렛에게 거짓으로 청혼한 후,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졌을 때 두 사람을 시골로 도피시키겠다는 것. 줄리엣 몬테규는 남동생의 이러한 제안에 그들의 사랑이 숨겨야만 하는 것이냐며 절규하지만 그 이상의 방법도 대책도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줄리엣과 줄리엣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후, 로미오의 제안처럼 도망가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그들의 비밀 결혼식은 줄리엣 캐플렛의 오빠인 티볼트에 의해 탄로 나고 만다. 여동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듯 보였던 줄리엣 몬태규에게 찾아가 그들의 사랑이 더러운 일이라며 폭언을 일삼고, 줄리엣과 줄리엣의 꿈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 이렇게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한 둘의 사랑은,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지워진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쓰이지 않은 것처럼, 빈 공백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공백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쓰인다. 사람들은 ‘줄리엣’과 ‘줄리엣’이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고, 듣지 않는다. 여자끼리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은 당연히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마치 ‘줄리엣’과 ‘줄리엣’의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줄리엣과 줄리엣>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지워진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곳에도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수많은 줄리엣들은 오늘도 외친다. “지워지지 않아, 아무리 당신들이 보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사랑을.”
글 | 김채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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