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 ‘추리소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유명세를 누린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는 다양한 영화, 드라마 등으로 재해석되며 리메이크 되어왔다. 그러나 한때는 이런 추리 장르가 문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유인즉, 추리소설은 예술성보다는 오락성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학의 진정한 가치 중 하나는 공감이다. 추리소설은 주로 탐정과 범죄자의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또 마음 한구석으로 찜찜해질 만큼 예리한 인간의 내면이 드러난다. 그러니 문학적 가치는 충분한 셈이다.
그렇다면 많은 추리소설 중에서도 ‘셜록홈즈’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홈즈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유로 꼽겠지만, 그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이 없었다면 지금만큼의 인기를 누리긴 힘들었을 것이다. 셜록홈즈는 날카롭고 과학적인 추리로 범죄자의 발자취를 낱낱이 파헤침과 동시에 범죄자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범죄자와의 불편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불편한 동질감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볼 감정, 바로 ‘공백’이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떠한 종류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곤 하는데, 홈즈는 그 인과관계와 범죄 과정을 마치 곁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밝혀낸다.
이 글에서 아서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19세기 최고의 탐정 셜록홈즈의 사건 2개를 소개해 보려 한다.
종류: 실종사건
돈이냐 명예냐의 문제로 인해 벌어진 우스꽝스럽고도 기막힌 사건.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평소 나무랄 것 없이 올바르고 성실한 남자가 실종되었는데, 그를 목격한 것은 그의 아내, 그것도 아편 굴에서 자신의 남편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용의자는 그 자리에 있던 아편 굴 주인과 흉측한 얼굴의 앉은뱅이 걸인. 수사 초기에 걸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남자는 이미 죽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아내는 남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이를 보고 셜록홈즈가 밝혀낸 진실은, 다름 아닌 앉은뱅이 걸인이 사실은 실종된 남자였다는 것! 기자였던 남자는 일전에 구걸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되어 실험을 할 요량으로 변장을 하고 길거리로 나섰는데, 그 수입이 기자 급료를 웃돌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이후 보증으로 빚을 지게 된 그는 구걸을 떠올리게 되었고, 명예와 돈의 가치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돈을 택하고 만 것이었다.
이야기 전체를 두고 보면 본래 남자가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과거에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필체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성실하고 좋은 이웃으로 살다가 문득 고개를 든 마음속 어떤 공백이 작을 일탈로 그를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걸인으로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던 시간들이 그의 공백을 채워주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자본의 공백도 일석이조로 채우면서 말이다.
종류: 살인사건
셜록홈즈가 의뢰인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또 범인을 검거하지도 못한 매우 드문 사건.
시작은 이렇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홈즈는 한 의뢰인으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의 백부와 아버지 모두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이 든 의문의 편지를 받은 뒤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후 본인도 같은 편지를 받게 되었다는 것.
이는 모두 KKK단이라는 단체로부터 온 경고장인데, KKK단은 과거 실존했던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비밀결사단체다. ‘우월함’에 대한 갈망이란 자신의 어떤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리 만족이니, 이 사건 역시 인간의 공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선 범죄자들의 공백 외에도 셜록홈즈의 공백 또한 엿보인다. 의뢰인을 지켜내지 못한 그는 범인을 붙잡아내고 말리라는 다짐과 동시에 그들을 당연히 붙잡을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지만, 범인들이 타고 있던 범선이 폭풍우에 휘말려 침몰되면서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허무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리를 통해 범인을 잡아내는 것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홈즈에겐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평소 홈즈는 자신이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건은 의뢰를 거부할 정도로 ‘재미있는 사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는 홈즈가 흥미에 대한 공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번 사건은 자신의 똑똑한 두뇌로 범인의 행동을 꿰뚫어보고 검거에 성공하려는 쾌감의 순간 직전에 홈즈가 자연으로부터 한 방 먹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공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리움, 갈망, 허무 등의 다른 이름으로 드러날 뿐이다. 셜록홈즈는 이러한 인간의 공백을 범인뿐 아니라 탐정인 홈즈와 그의 동료 왓슨 박사를 통해서까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는 완벽한 인간은 없으며 누구나 마음의 공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공백을 선과 정의로 채울 것인지, 아니면 범죄로 물들일 것인지를 말이다. 그러니 그 공백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글 | 김민경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https://instagram.com/monthly_docent?igshid=1c09qpgf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