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저미는 노을 사이로 들려오는 거룩한 종소리, 수확에 대한 기도를 올리는 부부.
그 자체로 가을의 풍요로움을 전해주는 듯하다.
그간의 노동을 통해 얻은 작물을 수확하고 나누는 계절에 들려오는 종소리는 당시는 물론 현대에도 마음의 윤택을 더한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수확의 풍요를 아는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시골의 농사를 도우며 화가를 꿈꾸었고 수도였던 파리에 올라와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꿈 많은 소년의 상경은 안타깝게도 쉬이 성공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청년 밀레의 계절은 약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수확의 기약 없는 길고 긴 기다림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에 밀레는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인기 있는 누드화를 모작하며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작은 밀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파리에서 인기 있던 그림들은 여신들의 누드화와 같이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밀레 역시 그와 비슷한 그림들을 그리며 성공을 위해 노력했으나 그에게 진정 그리고 싶은 가치는 고향에서 보고 자란 농촌의 사람들과 풍경에 담긴 노동의 숭고함이었다. 이에 밀레는 과감히 지난날의 기다림을 청산하고 프랑스 지방인 바르비종의 시골 마을로 내려가 농사와 그림을 병행하며 지내기 시작하였다.
밀레가 주목한 묵묵한 노동의 미학은 당대 프랑스 회화의 주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작업 활동을 이어 갔다. 일상의 소소한 풍요로움과 감사함은 화려한 신화에 비해 그 주목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밀레는 농민들의 소박한 모습에 담긴 경건한 아름다움을 해질녘의 농민 부부가 올리는 기도로 표현해내었고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의 화가 인생은 드디어 수확을 거두게 된다.
일 년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100일 남짓 남은 요즘.
해질녘의 종소리에 그동안의 고된 일과 끝에 얻어진 수확에 감사하는 이들도, 벌써 지나가버린 계절들과 다가오는 연말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 상황은 우리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기도 한다.
밀레의 그림과 같은 수확은 언제나 성찰과 긴 기다림 후에야 찾아오는 것임을 잊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 감사함을 찾아보며 안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지난 2021년, 그리고 남아 있는 2021년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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