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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Aug 17. 2021

강아지 자연식에서 다시 사료로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동안 하루에게 자연식을 급여해 왔는데, 이번 주부터 다시 사료로 천천히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루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자연식에 대해 많이 배우고 요리하는 즐거움도 느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자연식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자연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루의 아토피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무렵에 곰팡이균에 감염되면서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가려움증에 탈모 증상까지 보여서 결국 아토피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에 한 달 넘게 알레르기 처방 사료를 먹었는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서 식이 알레르기보단 환경 알레르기가 원인일 거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알레르기 검사에서도 진드기나 먼지류, 꽃가루에 수치가 높게 나왔습니다. 식이 알레르기 검사에선 야채류에 높은 반응을 보였는데, 검사 정확도가 60%에 불과하다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사료에서 생식으로 바꾸었고, 시행착오를 거쳐 자연식으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생식 관련 유튜브도 보고 책과 외국 사이트를 뒤져가며 공부도 하고, 신선한 곳에서 고기를 받았는데도 하루에겐 잘 맞지 않았습니다. 생식에서는 뼈 급여가 필수인데, 하루가 급하게 먹어서 매번 잡아줬는데도 위험해 보였습니다. 뼈를 먹다가 이빨이 파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그래서 생식을 오래 하신 분들을 보면 직접 고기와 뼈 비율을 계산해서 집에서 분쇄기로 갈아주시는 것 같더군요. 하루가 생식에 적응하면 기계를 사볼까 했는데, 한 달쯤 됐을 때부터 갑자기 설사와 젤리 변을 보더니 나중엔 미세한 혈변까지 봐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한 달 동안 생식에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장이 예민한 아이라 탈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생식은 중단하고 자연식으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자연식에 대한 기초가 없던 상태라서 급하게 자연식 요리책과 영양학 책을 사서 공부하고 책에 나온 요리법대로 급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낯선 식감에 어색해하던 하루도 금방 적응해서 잘 먹어주었습니다. 기호성도 좋았고, 생고기를 급여하는 것에 불안함이 있었는데 익혀서 주니 그런 걱정도 없어서 좋았습니다. (생식을 소분할 땐 항상 손이 느려서 신선도가 걱정됐거든요.) 요즘엔 로켓 배송 덕분에 식단을 짜서 재료를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배송이 되니까 요리하기도 한결 편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식을 시작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해외 사이트를 참고하고 수의 영양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제가 너무 무지한 상태로 자연식을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슘과 인의 비율을 맞추는 것부터 비타민과 무기질,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식단을 짜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걱정되는 건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거였죠. 잘못 계산된 자연식은 사료만도 못한 식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일이 바쁠 때는 식단 짜는 것도 쉽지 않아서 기존 레시피를 돌려 막다가 몇 번 화식 업체 제품을 이용했는데, 야채 알레르기가 있는 하루에게 딱 맞는 화식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영양 성분이나 비율이 적절하지 않은 제품도 있었고요. 우리나라에 자연식이 정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습니다. 지난달엔 번역에 감수까지 일이 몰리는 통에 거의 한 달간 화식 업체를 이용했는데, 새로운 화식에 적응하느라 그랬는지 설사도 잦고 피부 각질이 다시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사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 자연식을 시작했을 때 하루에게 먹는 즐거움을 보장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자연식을 계속 이어나가기엔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하루에게 좋은 사료를 먹이고 싶어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야채류와 곡물을 배제한 사료를 찾다 보니 지위픽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지위픽은 자연식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가 먹었던 사료인데, 1kg에 6만 원 가까이 돼서 금 사료라고도 불립니다. 육류 함량이 높아 알레르기 걱정은 없지만, 한 달에 사룟값만 약 30만 원 정도 듭니다. 비용으로 따지고 보면 자연식보다 더 들어가죠. 게다가 자연식을 만들 땐 남은 재료를 제가 요리해 먹을 수 있었지만, 사료는 그럴 수도 없고요;


그동안 하루가 잘 먹어줘서 자연식을 포기하려니 마음이 무겁고, 또 끝까지 해내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도 들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연식은 아직 시기상조였던 것 같습니다. 생식과 자연식을 계속 공부하면서 장기간 급여하시는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특식처럼 자연식을 급여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부터 천천히 사료를 섞어 가며 급여하고 있는데, 자연식 입맛에 길들여진 하루가 다시 잘 적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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