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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Sep 22. 2021

유기견 입양 기록: 안녕, 흰둥이

얼마 전에 유기견을 입양했습니다. 하루를 이미 키우고 있었기에 둘째를 입양하면 다견 가정이 되어 고민이 많았죠. 한 마리가 늘어나면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반려견들이 함께하며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기쁨은 온전히 다견 가정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죠.


사실 둘째 입양을 고민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데려오겠다고 결심한 순간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반려견을 키운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면서 견주로서 나름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는 것은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더군요.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 반, 설렘 반이지만 유기견을 입양하여 기르는 과정을 일기로 기록하려 합니다.




하루에게 동생이 생긴다면?


하루는 시바견 견사에서 데려왔습니다. 소위 강아지 공장과는 다르게 시바견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견사로 부모견을 확인할 수 있고 혈통서도 발급되는 곳입니다. 하루의 부견은 수상 이력이 있는 시바견이라 하루의 혈통서에 부견의 수상 경력이 적혀 있습니다. 일본에서 발급되는 혈통서라는데, 처음에 받았을 때 말고는 열어본 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루의 동생은 유기견을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주변에 얼마나 많은 강아지들이 버려지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특히나 시바견은 키우기 까다로운 종이라 귀여운 외모에 반해 데려왔다가 파양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중모라 털도 많이 빠지고, 에너지가 넘쳐 사고도 많이 치거니와 집에선 배변을 하지 않아 산책도 여러 번 나가야 합니다. 산책하다가 갑자기 안 가겠다고 주저앉는 일도 허다하고 개들과 소통할 때 눈치가 없는 편이라 다른 강아지가 싫다고 하는데 혼자서 놀자고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도 하루를 키우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루는 원만한 성격으로 개 친구들을 좋아합니다. 물론 시바 고집은 있지만, 개 친구들에겐 한없이 관대하죠. 산책하다 강아지를 만나면 늘 인사하려고 엎드리고, 친구들과 놀면서 장난감을 뺏겨도 OK, 제가 다른 강아지를 예뻐해도 딱히 질투도 안 합니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하루가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한다는 겁니다. 시바견은 독립적이라 옆에 붙어 있는 건 귀찮아하지만 그래도 한 공간에는 있어야 하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는 새끼 때부터 우리 가족과 떨어진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릴 땐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병원에 한 번 입원한 후로는 잠시만 자릴 비워도 낑낑대며 하울링을 했죠. 펫 카메라로 확인하면 세상 서럽게 쉬지 않고 울어댔습니다. 행여 이웃집에 피해가 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소리가 들리진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주변 이웃집 모두 반려인들이라 서로서로 이해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하루는 아무리 오래 산책해도 늘 놀고 싶어 하고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의지할 수 있는 개 친구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흰둥이와의 만남, 그리고 입양


포인핸드 앱은 반려인들에게는 아픈 손가락과도 같습니다. 한번 들여다보면 도저히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가도 입양은 갔는지 궁금해서 또 들여다보게 되죠. 언젠가 둘째를 입양하면 유기견을 데려오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루와 비슷한 친구들이 계속 유기되는 게 안타까워 자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둘째를 데려오는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하루와 체격이나 나이가 비슷하고 노는 성향이 맞아야 할 것. 아무래도 하루가 시바견이기 때문에 유기된 시바견에 유독 눈길이 갔습니다. 시바견은 놀 때도 거친 편이라 같은 시바견이면 괜찮을 것 같았죠.


그러던 와중에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하얀 시바견이었는데 표정도 축 처져 있는 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습니다. 인기가 많은 개들은 공고 기한이 다 되기도 전에 신청자들이 줄을 선다고 얘길 들었습니다. 이 녀석도 분명 신청자가 있을 것이고, 아직 공고 기한이 안 지나서 안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녀석의 입양 여부를 확인하던 중에 공고 기한이 지나면 칼같이 안락사를 시키는 보호소도 있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렇게 공고 기한을 하루 앞두고 문의나 해보자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녀석은 연계 동물병원에서 보호하고 있었는데, 입양 문의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 녀석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다음 날, 녀석을 만나러 가는 내내 비가 엄청 내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잠깐 기다리니 수의사 선생님이 녀석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실물로 처음 본 녀석은 사진보다 더 작았습니다. 수컷이라 하루보다 더 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죠. 하긴 녀석은 7kg이고 하루는 12kg니까요. (참고로 하루는 다이어트 중입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언제부터 떠돌았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 제보하면 시에서 포획해서 연계 보호소나 병원으로 보내는 시스템이거든요. 녀석이 차고 있던 하네스가 새까만 거로 보아 길을 떠돈 지 꽤 된 것 같았습니다. 녀석은 사람을 좋아하고 애교도 많았습니다. 만나자마자 애교를 부리며 정신없이 병원을 뛰어다녔습니다. 성격도 순하다고 하니 하루랑 잘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우리 가족은 그 녀석, 흰둥이를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목욕과 중성화 수술까지 일사천리로 끝냈습니다. 가져온 켄넬에 흰둥이를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 천지였지만 그래도 잘 참아주더군요.




흰둥이의 반전


둘째를 데려올 땐 첫째 강아지와 밖에서 만나 인사하고 같이 집으로 들어오는 게 좋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성화 수술도 했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서 인사하기로 했습니다. 당분간은 분리할 생각으로 제 방에 안전문을 미리 설치해 뒀습니다. 떨리는 하루와의 첫 만남. 부디 하루가 잘 받아줘야 할 텐데. 현관에 있는 안전문을 사이에 두고 하루를 소개하는데 마취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흰둥이가 사납게 으르렁대더군요.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지금은 몸도 아프고 낯선 환경에 예민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수컷은 암컷과 달리 중성화 수술이 개복 수술이 아니라 금방 회복한다고 하는데도 흰둥이는 아파했습니다. 누워 있기도 아픈지 저한테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집에 적응하고 수술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됐지만, 그래도 빨리 수술해서 회복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줄어들 수 있게 밥에 약을 타서 먹이고 조심히 방석에 눕히니 얌전히 눕더군요.


흰둥이는 제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꼬리를 치며 반겼습니다. 하루는 제가 들어와도 시큰둥한데 오랜만의 환대가 기쁘게 느껴졌죠. 대신 하루는 누가 나갈 땐 귀신같이 따라옵니다. 외투를 입거나 마스크를 쓰면 어느새 현관에 대기하고 있죠. 며칠 동안 관찰한 결과 흰둥이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개는 싫어합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순하니 하루와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하루만 봐도 사납게 짖어대고 으르렁거렸습니다. 하루만 잘 받아주면 둘이 잘 지낼 줄 알았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무래도 합사를 생각보다 더 천천히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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