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춘천의 주택으로 이사 오고 나서 월초에 우리 가족 집들이를 하려던 것이 한차례 미뤄져 돌아오는 주말에 다시 온 가족이 모이기로 한 터였다.
"엄마 생일도 같이 하는 거 알지? 별다른 계획 있어?"
"그냥 케이크 사고 저녁 같이 먹는 거 아녀?"
"그래도 칠순인데 잔치는 안 하더라도 특별히 신경 좀 써야 하지 않을까?"
상차림을 대여하여 칠순 분위기를 좀내보자는 누나의 제안이었다.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알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칠순상차림부터 떡케이크, 현수막 등등 칠순 기념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검색해보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잘 나가는 상차림 대여업체의 홍보 이미지들을 보니 상차림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대형 현수막에 고운 빛깔의 테이블보, 포인트 자수, 나비촛대, 모조 과일과 화병, 꽃다발, 개다리소반 등 엄마의 일흔 번째 생일을 특별히 축하해 주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삼남매가 톡으로 대화하며 여러 가지 상품 중 가장 좋은 색과 디자인, 가장 화려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그런 최상의 조합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떡케이크는 춘천의 한 떡집의 옥색과 분홍색이 섞인 복주머니 모양의 독특한 작품을 보여주니 누나들은 다들 만족했다. 상차림 대여업체는 옵션이 다양했다. 상차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장, 감사패, 어린이 화환, 케이크 토퍼 등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솜씨가 훌륭했다.그 유도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간 우리는 어린이 화환 6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엄마가 오는 날, 미리 배송받은 상차림 물품들을 거실 한가운데 보기 좋게 차려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내가 칠순이라도 이렇게 차려주면 어디 가서 일부러 자랑도 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상차림이었다.
모든 준비과정은 엄마에게는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아무 기대 없이 아들 집에 왔다가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깜짝 놀라는 엄마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두고 싶었다.
엄마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주문했던 떡케이크를 찾으러 갔는데 아직 완성이 덜 되어 시간이 약간 지체되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충분하여 별 걱정은 되지 않았다. 떡케이크는 투명 상자 안에서 영롱한 빛깔을 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겠지. 마트에 들렀다. 열세 명대식구의 이틀 동안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쯤이면 됐다 해도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을 맞이하는 아내는 먹거리가 부실할까 걱정되어 연신하나만 더 사자고 하며 가리비도 하나, 훈제오리도 하나, 꼬막에 과일에 주스에 닭강정에 고구마에 기타 등등 열 가지 정도를 추가로 집어 들었다. 마트에서 순수 먹을거리로만 장 본 것으로는 역대 최고의 금액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엄마가 먼저 도착해 차려진 칠순상을 미리 보고 김이 샐까 전전긍긍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를 태우고 온 큰누나네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로 집안에 들어갔고 엄마는 이미 웃으며 상차림을 느긋이 감상하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서프라이즈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비장의 무기. 어린이 화환이 있었다. 2층에서 엄마 몰래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담은 화환을 목에 걸고 2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이벤트였다. 준비가 끝난 후 엄마의 시선을 뺏으며 몰래 유튜브로 위풍당당 행진곡을 틀었다. 웅장한 음악에 1층으로 걸어 내려오는 손녀 손자들을 본 엄마는 기대보다 훨씬 더 놀라고 기뻐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우리 삼남매는 예정된 순서대로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고 단체사진, 엄마의 독사진, 각 가족단위의 사진을 찍으며 여느 칠순잔치 못지않은 엄마의 생일을 치를 수 있었다. 역시 어떤 축하자리든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쓰더라도 행사에 걸맞은 장식과 이벤트가 없으면 도무지 행사 같지가 않다. 엄마는 바로 촬영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으며 누나들 몰래 나에게 가장 잘 나온 거 몇 장을 뽑아서 액자를 만들어 달라는 평소 같지 않은 적극적인 요구를 했다.
이후 준비했던 각종 잔치음식들과 술을 누나, 매형들과 나누어 마시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손자들까지 다 모여 모든 가족이 들어간 사진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란 걸 깨달았다. 그저 몇 달에 한 번씩 모이니 서로 간의 거리야 멀 것도 없지만 모두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 한 장. 그 사진 한 장이 엄마 또래의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자랑거리가 되는지 이제 막 사십 대에 접어든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자랄 때와 다르게 최근에서야 엄마는 당신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얘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반갑다. 항상 주기만 하는 존재는 받는 게 어색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삼사십 년을 우리에게 주기만 한 엄마는 이제야 조금씩 갚을 힘이 생긴 나에게, 의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나 보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얼마 전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한 혈압계와안마의자를 사러 가야겠다.싸고 적당한 것을사달라는 엄마말은듣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