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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Sep 06. 2021

아파트 한채 정도는 있지만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던 나는 삼십 대 중반까지는 평생 동안 결코 집을 소유하게 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만큼은 아니었지만 과거에도 서울의 집값은 비쌌다.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란, 시골 동네에서조차 가난했던 나 같은 사람이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을 진작에 포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던 탓도 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고 인서울의 대학에 들어가 탄탄한 직장을 잡아 안정적으로 산다는 정도의 목표가 있었을 뿐 집을 산다는, 아니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증식한다는 것은 나와  주위의 가까운 친구들에겐 결코 친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돈만을 보고 산다거나 경제가 항상 대화의 1순위를 차지하는 삶을 폄하하기도 했다. 가장이 되어서도 악착같이 부를 늘려가겠다는 생각은 그저 생각에 머물 뿐이었다. 지금 어느 자리에 갔을 때 그 자리가 부동산과 주식 외에는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들이 잘 된 소식에 초연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한다. 친구 누구의 집이 얼마 올랐다는 얘기를 들으면 뒤늦게 그 부동산 실거래가와 호가를 자세히 찾아보기도 하고 직장동료의 주식 대박 소식에는 몰래 그 종목의 주가 변동 추이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자극을 받기는 하지만 따라가려는 의지는 생기지 않는다. 평생 이럴 것 같다. 부자가 되기는 애초에 글렀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20년을 보내고 서울의 중앙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 서울에 방을 구했다. 2000년 신림동의 1800만원짜리 전세. 신림역을 기준으로 문화교를 지나 미림여고 방향으로 가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언덕길이 나오는데 그 꼭대기에서 서너 집 아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교대 졸업반이 된 둘째 누나와 같이 일 년 정도나 살았을까. 그 조그만 방에 취업준비를 하던 큰누나도 상경하여 몇 달간 삼 남매가 같이 살았었다. 서울의 삶은 대개 그런 줄 알았다.


두 번째 집은 롯데관악백화점 건너편의 주택가 반지하 투룸이었다. 원룸생활이 불편했는지 누나는 반지하를 감수하고 방이 둘 딸린 2500만원짜리 전세를 구했다. 반지하의 사회적 의미를 몰랐던 나는 그저 내 방이 생기고 넓어진 집이 만족스러웠다. 그 집에서 지내다 군대에 갔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입대 이후로 여름 장마에 침수가 한번 되었고 그 이후에는 도둑이 한번 들었다고 한다.


전역 이후에도 딱히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성을 위해 서울에 있는 남매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교사로 임용된 누나는 돈을 착실히 모았었고 전세 6000만원으로 숭실대 후문 건너편 삼겹살집 5층 투룸을 구했다. 방크기도 괜찮았고 특히 천장이 통유리로 된 베란다가 좋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 통유리 사이로 물이 새는 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집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일 년 다녀오고 나서는 학교 바로 앞 고시원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사글셋방에 1년 있었다. 옷장, 책상, 의자, 선풍기가 옵션이었고 공동주방과 공동화장실이 있었다. 20초 정도 걸리는 학교 정문과의 거리가 나머지 단점들을 상쇄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처음 혼자 지내는 것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방에 도둑이 들었다고 했다. 그 방에서 가장 큰 자산이었던 노트북과 동전이 가득한 저금통이 없어졌다. 주인의 관리책임과 온정의 발동으로 얼마라도 월세 감면을 기대했으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누나 품으로 들어갔다. 혼자 살아보니 역시 가족이 최고였다. 상도역과 숭실대입구역 정 중간쯤에 있는 빌라의 5층 투룸으로 전세 7500만원이었다. 이때부터는 나도 직장인이었기에 예전보다는 풍족했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납부했다. 누나는 베테랑 교사가 되었고 전세 계약기간이 끝날때즘 결혼을 했다.


내 선택은 석촌동 고분 옆에 위치한 동네슈퍼 2층 4500만원짜리 원룸 전세였다. 당시 여자 친구가 근처에 살았단 이유만으로 익숙하지 않은 동네로 넘어왔다. 방도 작았지만 화장실은 자연스럽게 앉아서 샤워하는 방법을 터득할 정도로 정말 좁았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한 것에 만족하며 지내던 중 하루는 자려고 누웠는데 천장 형광등에서 '똑똑'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늦은 밤이라 별거 아니겠지. 대충 대야를 받쳐놓고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엔 소리가 '주르륵'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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