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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 Mar 20. 2023

남편의 출장과 엄마의 결심

엄마때문에 살 빼기로 결심하다

 남편이 열흘 일정으로 출장을 떠났다. 나의 엄마는 작심한 듯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띠를 머리에 두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 딸의 다이어트는 내가 책임진다!



 그동안 나의 다이어트에는 ‘왜’가 없었다. 살을 빼야 하는 이유가 특별히 없었다. 물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뻔한 ‘왜’는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이상향 같은 이유였고 특별히 나를 움직이게 할 만한 동기가 전혀 없었다.


 젊은 시절에야 디자이너라는 직함에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몸매관리를 하고 살았다. 외형적인 것이 곧 능력이 되는 직업을 가졌을 때는 몸매가 나를 드높이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디자이너가 왜 저렇게 뚱뚱해?’라는 소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결혼 전에는 이성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라도 절대 내 몸이 뚱뚱해질 시간 따위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점점 살을 빼야 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내가 지금 디자이너도 아닌데 뭐 어때, 특별히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연애할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이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한 게 없는데 뭐 어때 등 온갖 핑계를 일삼았다.

 결국에는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내면이 중요한 거지.’라는 합리화로 굳어져 나는 더 이상 살을 빼야 하는 이유가 단 1%도 없어졌다.


 그런데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와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적잖이 혼란스러워하는 딸이, 그 혼란의 허기를 음식으로 채운 딸이 친정엄마는 안쓰러우셨나 보다. 나의 처치곤란 살덩이는 엄마의 측은지심을 다시 한번 발동시켰다.

 엄마는 남편의 출장날, 아빠와 함께 우리 집으로 오셨다. 마흔을 바라보는 딸이 혼자 고단할까 싶어 육아를 거들러 오셨는데 육아를 거드는 것을 넘어서 다 큰(이라 쓰고 다 늙어가는 이라 읽는) 딸을 ‘잘’ 먹이기 위해 오신 것임에 분명하다.

 혼자 있으면서 제때 끼니를 챙기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먹다 이 모냥이 된 몸뚱아리에 제대로 된 끼니를 매번 선사하신다. 다이어트에 최적화된 식단임에도 너무 맛있어서 내가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그저 어리둥절하다.


 나의 엄마는 지금 본인의 팔과 어깨가 저리고 아플지언정 딸자식의 다이어트식 재료준비에 매일 주방에서 떠날 줄 모르신다. 오랜만에 딸의 집에 오셨음에도 맛있는 요리 하나 내 손으로 뚝딱 해드리지 못한다는 죄송함에 다 큰 자식이 여전히 엄마의 속을 썩이고 있다는 죄송함이 더해졌다.

 내가 알아서 잘 챙겨 먹겠다고, 힘드니 그만하시라 말씀드려도 엄마는 본인이 가면 알아서 잘 챙겨 먹어라 하신다. 주방을 내어주실 마음이 전혀 없으신 엄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는 엄마가 내어주시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열심히 살 빼는 것,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욱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간 동안 살을 빼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엄마의 사랑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살 빼라는 백 마디 말보다 엄마의 행동 그 자체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나의 다이어트는 내적동기가 아닌 외적동기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친정엄마의 노력과 사랑’이라는 강력한 외적동기로 시작된 나의 다이어트가 끝끝내 ‘나’를 이유로 하는 내적동기로 발전되어 건강하고 ‘나’ 다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다양한 요리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지 몸보신을 하는 건지 모르게 나의 미각을 채워주시는 엄마께 무한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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