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een T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Aug 30. 2024

Been There - 후쿠오카 (2)

후쿠오카에 갔다 온 것은 마치 휴가 속에서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보름이 조금 넘는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왔는데 그중에 일부를 쪼개서 후쿠오카를 다녀왔으니 말이다. 캐나다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도 사실 여행을 한다는 느낌은 아니다.  가족들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부모님 집과 처갓집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휴가 기간 중에 후쿠오카를 다녀오니 정말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여행이긴 했지만 애초에 대단한 일정은 없었다. 2번과 3번이 아직 어려서 많이 걷거나, 이런저런 가게를 구경하기에는 부적합한 녀석들이기 때문에 그냥 대충 하기로 했다. 물론 나도 1번만 있을 때는 여행을 가면 온갖 계획을 다 세웠다. 어디는 꼭 가고, 어디에서는 무엇을 꼭 먹어야지 하는 식으로. 만약 그 계획 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덮어놓고 2번과 3번까지 낳아 키워보니, 여행할 때 굳이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즐겁자고 하는 여행인데 뭐 누구라도 즐거우면 되었지. 그래서 이번에도 한 두 개 정도 굵직한 일정만 생각해 놓고 나머지는 그냥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 결과 첫날의 주요 일정은 지하철을 타고 하카타역과 텐진역 주변을 살피고 저녁에는 일본 유도부 선배였던 지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예전과 바뀐 것이 있다면 하카타역이 예전보다 훨씬 근사해졌다는 것이고, 텐진에 로프트는 사라지고 (나중에 보니 예전보다 좁은 장소로 위치를 옮겼다), 돈키호테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물 반 한국 사람 반인 것도 달랐다.




유도부 선배는 나보다 약 20살 많으신 분이다. 그분을 처음 만났던 건 한 유도부 행사에서였다. 무슨 행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나 많은 선후배가 모였던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그런 행사가 있으면 항상 마지막에 '만세 삼창'을 외치며 끝이 난다. 말 그대로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반자이(万歳, ばんざい)! 반자이!! 반자이!!!'라고 세 번 외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니 이게 무슨 지랄이지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술도 들어갔겠다 즐거이 만세를 외쳤다(만세를 외치는 것이 한국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해왔던 일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날도 만세 삼창을 외친 후 건물을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선배분이 나에게 다가오셨다. 자기는 몇 년에 졸업한 유도부 누구인데, 뜬금없이 언제 한 번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일본 사람들은 집으로 초대를 잘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혹시 이 분은 남자를 좋아하시는 것인가(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님)? 자리가 파하는 분위기라 어수선하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우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그분 집에 가서 보니 사모님께서 한국말을 배우고 계셔서 한국에 관심이 많으셨나 보다. 나 말고도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을 종종 집으로 초대를 하신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분들은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를 하시고 싶어 하셨지만 마침 얼마 전에 이사를 하시는 바람에 밖에서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나 혼자였을 때는 모르겠는데, 이제는 대가족이 되어버린 이상 민폐보이(2번)와 민폐걸(3번)을 데리고 다른 사람 집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밖에서 만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한 곳은 텐진에서 지하철 세 정거장 떨어진 토진마치역(唐人町駅) 근처의 한 일식집이었다. 중국 사람을 뜻하는 '唐人'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제나 카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있는 차이나타운들도 한자로는 '唐人街'라고 쓰기 때문에 그 간판들을 보아도 카레가 떠오른다. 예전에 토진마치역 근처에서 카레와 쌀밥 1kg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정말 강렬한 기억이다 (예전 글 참조, 궁금해서 구글 지도를 보니 이제는 없어진 듯하다. 아!!).


식사 자리에는 선배님 부부와 아들 이렇게 세 분이 나왔다. 아들군을 처음 보았을 때 초등학교 3~4학년인가 그랬는데 어느새 대학도 졸업을 했다. 지난번에 들었을 때는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오사카에 취직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건강 상의 이유일까 어떠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후쿠오카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기로 한다. 묻지 않아도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겠지.



12년 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친절하셨다. 그리고 사모님과 아들군은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와이프와 아이들과 힘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유도부 선배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슬프게도 거의 알아듣지 못하였다. 나의 일본어는 지난 세월 동안 쓸 일이 없어서 점점 퇴화되어 마치 네덜란드어를 잊은 박연과도 같았다. 하지만 연말에 카드를 보낼 때는 ChatGPT의 힘을 빌려 꽤나 능숙하게 써서 보냈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일본어에 유창한지 아셨나 보다.


그래서 내 귀에는...

아노... 사이킨 힛코시시테 쇼타이 데키나크떼 고멘네... 데모 고노 아토데 잇쇼니 이쿠상쟈버사아..

아노... 오쿠다 센세이 오보에떼르노네... 오쿠다 센세가 붕냉헞ㄷ아ㅏㅓㅂㅎ에ㅏㅓ

정도로밖에 들리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 알아듣고 대화를 했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 조금 우울했다. 그 반면 영어로 대화를 진행하는 반대쪽은 오히려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갑자기 물수건으로 펭귄을 만들며 잘 놀고 있었다.




음식은 역시 좋았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기 어려웠다. 이 녀석들은 바다에서 먼 동네에서 자라서 그런지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다. 뭐 먹으려고 해도 먹을 기회가 정말 없다. 나도 토론토에나 나가야지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튀김 위주로 먹고 나머지는 모두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그래서 정말 원 없이 해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이런 식당에 가면 소량의 고래 고기가 나오는데 엄청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특이해서 먹어보게 된다. 회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먹어봐서 그런지 도미 머리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이 분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어느새 내가 그 정도 나이가 되었다니. 만약 지금 내가 20대 초반의 유학생을 알게 된다면 그분들이 했던 것처럼 환대를 해 줄 수 있을까. 물론 못하겠지. 다시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캐나다로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내가 그동안 받았던 환대를 조금이라도 보답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Been There - 후쿠오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