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상처들로 고통받는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글
#1 요새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명상하고 글 쓰는 것이 조금씩 습관이 되어가네. 최근 있었던 주변의 여러가지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하루를 시작해.
#2 우리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가끔은 소용돌이치는 감정들과 근거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스스로 고통주는 일들을 피할 수 없겠지만, 또 그런 거친 밤바다를 지나 따스한 해가 뜨기 시작한 평온한 구역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나의 지금 기분은.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또 다시 파도의 구간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곧 다가오겠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두렵진 않아.
#3 인생이란 것은 쉽지 않은 항해야. 거친 파도와 바다괴물과 느닷없이 나타나는 폭풍우로 네가 몰고 있는 작은 배 하나 정도는 가볍게 부숴버릴 수 있지.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불안감들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그 트라우마에 종속되어 살기도 해. 이제는 많이 벗어낫지만, 나 역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 흔적들이 좀 남아있고.
#4 매우 가까운 몇 명에겐 고백했지만, 나에겐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어.
#4-1 초등학교 시절 외삼촌이 비행기 폭파사고로 사망하고 가족들이 풍비박산나는 것을 바라보았지. 우리 엄마 한 살 밑이었던 남동생, 너무나 나에게도 친절했던 외삼촌은 시신도 찾지 못한채 장례식을 치러야 했고, 몇 년 동안은 집안은 초상집이었어. 그리고, 몇 년 안에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났지. 집안엔 침묵과 울음만이 가득했어.
#4-2 부산에서 살던 나의 학창 시절, 우리 엄마가 하던 약국은 산복도로라고 불리는 경사가 급한 언덕길의 굽이 부분에 있었어. 어느날, 브레이크가 고장난 덤프트럭이 과일 트럭과 길을 지나가던 고등학생을 치어 즉사시키고 약국 바로 옆에 있던 슈퍼마켓에 들이박아 건물이 붕괴되었어. 나는 그 시간 엄마 약국을 도와주느라 약국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모든 현장을 직접 봤어. 수박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간 학생의 머리를 소방관들이 끄집어 내는 것도 봤고, 가게에 머리를 처박은 덤프트럭과 자욱한 먼지들도 생생하게 기억나. 트럭이 조금만 방향을 틀었으면, 그 고등학생은 내가 될 수도 있었어.
#4-3 어느날, 동네에서 점을 좀 본다고 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약국에 앉아 있는 나의 관상을 보고 외할머니에게 이야기했어. “재주는 많은데, 명이 짧겠네요.”
#5 명복의 실
이 기겁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외할머니는 그날로 물 한사발을 떠 놓고 <명복의 실>을 감아주셨지. 그리고 내 손에 몰래 꼭 쥐어 주시고, 외할머니의 마음을 담은 것이니 평생 잘 보관해야 한다고 말해 주셨어.
“외할머니가 재완이에게 명복의 실을 가득 감아 주노니, 네 생전에 장래 출세를 길이 축원한다”
1983년 일이니, 삼십년 전, 내가 스물한 살이었던 시절이었네.
몇 년이 지나고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외할머니는 병에 걸리셨어. 담관암이었는데, 외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홧병이셨지. 외할머니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을 때, 이번에도 외할머니는 나에게 편지를 전해 주셨어. 예전에 나에게 주셨던 <명복의 실>도 언급해서 기억을 되살려 주셨지.
“세상을 떠날때가 되어 할머니가,
최재완아, 긴 명복의 실을 듬뿍 감아주노니
서울대학 명문학과로 한국에서 제일 제일 일등 입학하여
영광중첩하며 백년이나마
아무 고해 없이 출세를 기원한다
이 돈 적으나마 입학하여
책이나 연필을 사서 쓰도록 하여라
보고 싶은 완아야, 할머니 본 듯 쓰거라
병중 손 떨며 글을 써서 못 알아 볼 듯
2월 2일 그리운 할머니가”
외할머니의 손편지들과 명복의 실은 지금도 나의 보물 1호로 잘 간직하고 있어.
#6 2015년엔 병원 상가 건물 화재가, 2017년엔 아버지의 급성 심근경색이 찾아왔어. 화재 사건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유독가스로 범벅된 현장을 수습하고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진정하느라 곧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 눈 앞에서 쓰러진 아버지의 보라빛으로 변해가는 얼굴을 보면서 죽음의 신이라고 불리는 하데스가 찾아온 것을 알았고, 그에게 아버지를 뺐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 심폐소생술로 갈비뼈 두 대를 부러뜨리고 제세동기를 두 번 사용하고 나서야 겨우 아버님의 숨을 돌릴 수 있었어.
#7 올해는 유난히 많은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났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나를 잘 돌봐 주시던 친척 어르신들이시라 마음이 쓸쓸했네.
#8 어떤 것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하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가.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는 것들은, 정신과 육체가 모두 미숙하던 시절에 벌어진 이벤트로 인해 얻어진 경우가 많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곤 해. 그때 내 껍질이 좀 더 단단했었으면 어땠을까. 그때 내 곁에 외할머니가 계셔줘서 다행이었다. 안 계셨으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과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명복의 실>같은 상징 같은 물건이 없었다면 과연 외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그때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읽었던 책들이 도움이 되었네..... 기타 등등.
#9 누구나 작든 크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거야.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다 열어보고 분석하고 치료방법을 생각해내겠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상처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회피하고 싶고 부인하면서 사는 길을 택하는 것 같아.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 생체의 어떤 작은 징후들을 무시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큰 질환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지. 그때 환자를 설득해서 더 자세히 검사했어야 했는데, 그때 귀찮다고 환자를 돌려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잘 했으면 저런 일은 환자에게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10 트라우마는 다양한 증상으로 시작해서 삶에 생채기들을 남겨. 사람들을 피하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들의 애정을 더욱 바라기도 하고. 집 안에 갇혀 있기도 하고, 반대로 미친듯이 세계를 떠돌게 만들기도 하고. 침묵 속에 가둬 두기도 하고, 반대로 끊임없는 자극으로 자신을 괴롭히게도 하고.
#11 하지만, 트라우마는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아. 제대로 우리가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회복할 수만 있다는 조건만 있다면. 쉽지 않은 일이지. 아마, 남이 도와 준다고 해도 아주 잠깐 티끌같은 도움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을거야, 대부분은.
#12 그런데,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 나에게 트라우마로 느껴졌던 죽음에 대한 생각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삶에 대해 진지해졌을까. 사랑에 대해 진지해졌을까. 나에게 명이 짧겠구나 이야기해서 외할머니를 패닉에 빠뜨렸던 동네 점쟁이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외할머니는 나에게 별 기억이 남지 않는 어르신 중 한 분이 되지 않았을까. 트라우마는 없으면 안 되겠구나.
그러니 양면성을 가진 트라우마를 잘 버텨내려면, 성장하려면, 내가 좀 더 단단해져야겠다, 내 곁에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트라우마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지혜는 장착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오늘 끄적임은 니체의 글로 마무리.
“나를 죽이지 않는 것들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