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시대: 존재를 위한 질문

by 심연온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아는 끝없이 가시화되어야만 하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가, 결국에는 ‘나는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가’를 묻곤 한다. 그렇게 불안해진 우리는 결국 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인가?




자의식이 커지고, 스스로의 모습에 한창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진정한 자아실현이라고,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엔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결코 내 생각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무렵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 서적들이 이야기했던 것들, 그리고 그 자기 계발 서적들이 인용했던 유수의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 천착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년 차가 되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뚜렷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 질문을 끊임없이 파고들수록 도리어 나는 더욱더 불안해지고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라는 심연에 갇혀서 도리어 모든 것이 어둑어둑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다. 자신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고, 자아실현 끝에 찾아오는 성숙한 마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 믿고 나를 찾아왔던 수많은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없이 자신의 마음속을 헤매었지만,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제기랄, 나란 존재가 도대체 뭐냐고!!


어쩌면, 수많은 삶을 구하고 싶어, 누군가의 마음속을 한없이 후 벼 파고들었던 그 심연의 순간이 도리어 누군가를 더 고립시켰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모든 것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많은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은 마음만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아니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자아와 마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근대의 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고, 칸트는 이성과 도덕을 통해 자율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했다. 이성으로 단련된 마음은 세상을 계몽시켜 한없이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후, 주체로서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되었다. 심리학의 태동 아래, 에릭에릭슨과 매슬로우, 칼 로저스 등의 여러 학자들과 임상가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 안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실현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저마다의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은 세속적 성공, 아니 생존을 위해서도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되어갔다.


이제, 자아실현은 이제 근현대사회의 신흥종교가 되었다. 자아실현은 하나의 신념 체계가 되었고, 그 신념은 "너는 너 자신을 실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율을 강요한다. 이 종교에는 구원도 있지만, 실패자에게는 어김없이 죄책과 낙인이 주어진다.


자아실현은 모든 인생을 구원하지 못한다. 때때로 자아실현의 지나친 강조는 인생에 있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불행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불행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자아실현은 의도치 않게 개인의 불행을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렸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했다. 그 결과 개인은 예측불가능한 세상 앞에서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무분별한 경쟁의 피를 빨아먹고사는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은 미시적으로는 개인을 무력감과 소진으로 내몰고, 거시적으로는 기후위기와 생태재앙을 촉진했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이 불안한 시대에 자아실현의 담론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기보다는 조금은 다른 질문을 던지며 지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누군가와, 혹은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떠나보고 싶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무언가와, 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존재는 결코 홀로 증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연결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질문에서, 사유를 시작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