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굴레

by 심연온

“저는 자존감이 낮아요.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올릴 수 있을까 해서 왔어요.”
“그게 왜 문제죠?”


늦은 오후, 진료실에 내리앉은 햇살만큼 피로감이 차곡차곡 쌓일 무렵이었다. 처음 만난 그가 그렇게 말했다.반문하는 내 말끝에 짜증이 묻어날까 싶어, 말을 이어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내 피로와 짜증을 감안하고서라도, 정말로 묻고 싶었다.


왜 자존감이 문제일까.


무안해하는 그에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감정인데… 음, 자신을 존중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을까요?”
“그야, 제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존중할 수가 없어요.”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존중받으면 안 되나요? 무시당해도 되는 건가요?”


그는 자존감이 낮다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기준’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했다. 우리는 자존감에 대해 말할 때, 늘 ‘능력’, ‘성과’, ‘쓸모’ 같은 단어를 동원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곧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능력이 없다는 건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결국 나는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진료실 안의 대화는 결국 ‘너는 얼마나 쓸모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맴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정말로 당연할까?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다. 한때 미국에서는 낮은 자존감이 사회적 병리의 근원이라 여겨졌고, '자존감 운동'이 일어났다.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의원 존 바스콜셀로스는 ‘자존감과 개인적·사회적 책임감 신장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막대한 예산이 자존감 고양에 투입됐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방식들이 등장했고, 때로는 성적이 낮아도 무조건 칭찬하는 방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존감 운동이 흥행한 후, 미국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사실 자존감은 꽤나 논쟁적인 개념이다.
수많은 연구들이 자존감과 병리의 관련성을 반박하고 있고, 자존감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도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대부분의 연구는 자가보고식 설문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당사자의 주관적 태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존감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척도인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조차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와 같이 능력과 쓸모를 자존감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자존감을 평가하는 설문과 마찬가지로, 그와의 대화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로 같았다.
잘하는 게 없어서 자존감이 낮고, 자존감이 낮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
그 미로에는 출구가 없었다.


“로젠버그 척도라는 게 있어요. 자존감을 측정하는 유명한 설문지죠.
그런데 문항 내용을 보면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는 식이에요.
결국… 능력과 쓸모를 묻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그걸 기준 삼아 자기를 평가하게 되겠죠.”




도대체 우리는 왜 스스로를 존중하는가? 아니, 왜 존중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타인을 존중해야한다거나, 인권을 이야기할 때 능력이나 쓸모를 기준 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정작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데에는 능력과 가치가 필요하다고 믿는 걸까? 진료실 안에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믿어온 전제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존중에 능력이나 쓸모, 가치가 꼭 필요할까요? 그냥 존중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닌가요?”


그의 말대로 근거 없는, 부풀려진 자존감 역시 불안이나 중독, 정서조절의 어려움과 같은 정신병리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자존감은 ‘내가 가진 능력’에 기반해야만 하는 걸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사랑과 존중의 근거로 능력을 말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렇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평가할 때,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은 근대 이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해온 "능력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쉽쓸고, 그것이 경제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확장되면서 능력주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한경쟁에 내몰렸다.

패자는 자기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고, 승자는 언제든 도태될까봐 두려워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 혹은 자기 자신을 — 능력에 따라 평가할 수 있는 존재로 축소해버린다.
비록 그 능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노력보다도 더 많은 우연과 행운, 출신과 사회구조, 역사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는 진료실에서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정말 자존감이 문제인가요?”


어쩌면 자존감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은 다른 관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타인과 세상의 영향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
내가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연결되어 존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능력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
나와 연결된 수많은 존재들과 세계 전체를 향해 —
존중이라는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조금 더 크고 온전한 존재로

확장해가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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