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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Nov 09. 2024

김밥 가지고 갈래?

오늘도 사랑을 담아, 가족의 행복

아침 교육이 있어 나가야 하는 바쁜 틈에도 아이들 싸주고 남은 재료로 남편의 점심 김밥도시락을 만들고, 과일도 조금 담았다.


"김밥 가지고 갈래?"


어쩐지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어 툭 건네주곤, 후다닥 외출했다.




얼마 후, 잠깐의 틈에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며 찍은 사진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편안한 기분이 전해졌다. 사나이라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진 속에서 굉장히 감동받은 듯한 남편의 모습이 느껴졌다.






평일 아침부터 김밥을 싸게 된 건 사실 귀하신 따님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엄마표 원조 김밥(재료가 알차게 들어있는)이 맛있지만, 특별히 바쁜 엄마를 위해 간단한 스팸김밥을 먹겠다고. 요즘 좋은 엄마 놀이(?)에 빠져있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햄과 당근, 계란을 준비해  미니김밥을 만들었다. 빨리 먹이고 등교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보니 손이 저절로 빨라졌다. 나름 예쁘게 만든 김밥을 먹여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니, 늦게 출근한다며 어슬렁거리는 남편이 그제야 눈에 보였다.  늦게 가는 날은 대충 아점을 먹고 가다 보니, 중간에 점심을 건너뛰고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주,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싸줬던 걸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엔 도시락을 싸줬다.



아직 시간이 조금 여유 있길래 남편 도시락을 준비해 건네었는데, 자신만을 위해 만든 아내의 정성 어린 도시락이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이었던 모양이다. '도시락 따위는 연애할 때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이 남편만을 위해 첫 도시락을 챙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아이들만 챙기기에도 여력 없었으니깐.  늘 아내의 부재로 아이들 저녁을 책임지며 퇴근하자마자 뛰어왔던 남편의 그 시간이 부쩍 고마운 요즘이었다. 한 번쯤 해주고 싶은 마음에 준비한 건데, 남편이 원숭이가 엉덩이 춤을 추듯 좋아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코스모스



사실 퇴사 후, 아이들만큼이나 남편의 여유로운 저녁시간이 보장되면서 남편이 한결 편안해져 보인다. 30대 후반에 결혼하면 현모양처 아내가 차려주는 식사를 기대했을 텐데, 막상 현실은 이상과 달랐으니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늘 맞벌이하게 해 미안해하던 남편이었기에, 작은 도시락이지만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알찬 김밥 속재료가 아니어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니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락이었다.



아이들보다 사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할 사람인데, 정작 더 관심 가져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 내 손을 떠날 아이들보다 내 곁에 오래 머물 그인데, 더욱 챙겨주고 보살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도시락이 뭐 그리 큰 대수라고. 오늘 저녁은 내 남자가 좋아하는 메뉴부터 신경 써 챙기기로 했다.





사실 남편이 너무 좋아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냥 좋지만은 않다. 혹시 매주 기대하고 있는 '간 큰 남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벌써부터 다음 주 도시락 반찬 메뉴부터 고민하며 장바구니를 체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살며시 현모양처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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