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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Nov 25. 2024

엄마표 요리사로 재취업

식단 짜기의 고군분투기: "엄마는 요리사가 아니란다."

엄마의 숙명처럼 따라오는 매일의 식단 짜기는 전쟁과도 같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끊임없이 ‘오늘은 뭐 먹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 구내식당이 얼마나 편리했던가. 늘 마음에 드는 반찬은 아니었지만, 고민할 필요 없이 정해진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는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되었다. 워킹맘 시절에는 아침은 바쁘니 간단하게 주먹밥이나 시리얼로, 퇴근 후에는 시간 없으니 냉동식품이나 배달 음식으로 대부분 해결한 편이라 식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바빴으니, ‘비비고’가 워킹맘들의 큰 힘이 되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늘 칭찬하기 바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맞춰주곤 했지만, 3개월쯤 지나니 아이들조차도 "그냥 엄마가 알아서 해줘"라며 손을 놓아버렸다. 매일 본인들도 식단을 고민하는 게 귀찮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커가면서 점점 심해지는 아이들의 편식.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들이 아니어서 식단 짜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학교 영양사 선생님은 어쩜 그리도 다양한 식단을 균형 있게 작성하시는지 정말 배워보고 싶다. 매달 배포되는 급식표만 보아도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다양한 반찬과 맛있는 식단을 제공하느라 얼마나 힘겨울지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다들 맛있다는 학교 급식을 거부하고, 늘 엄마표 음식을 원한다. 덕분에 나의 추가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정 요리사로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퇴사 후, 매일 식단을 고민한다.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는 커졌지만, 까다로운 아이들의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쉽지 않다. 대학에서 배운 식품공학 전공들은 이럴 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공 관련 일을 안 한 지 20여 년이나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기억나는 것도 없다. 그러다 상황이 심각해진 건 아이가 학교에서 5대 영양소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영양소가 충분하고, 어떤 영양소가 부족한지 공부한답시고 엄마의 식단을 지적하는 아이를 보며 잠시나마 다시 뱃속으로 넣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나의 식단은 자연스럽게 5대 영양소를 고려한 다양한 메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골고루 배치하도록 신경 쓰게 되니 이것도 병이지 싶다.     


 

어릴 때 편식 없이 잘 먹던 아이들이 커갈수록 편식은 더 심해지고, 반복되는 메뉴를 거부할 때마다 그냥 확 굶겨버릴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우리 부부도 40대에 접어들며 건강의 적신호들이 켜지기 시작했기에, 더 건강한 음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냉동식품과 인스턴트 음식들을 줄이고, 최대한 집밥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바쁠 때는 할 수 없어 포기하고 그저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좀 여유로우니, 더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려고 노력 중이다. 자연스레 하루 일정에서 식사 준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엄마가 해주던 집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엄마와 통화하며 불현듯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택배로 만들어 보내주시는 나의 엄마처럼, 나도 아이들에게도 엄마표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부족한 음식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보고 싶은 충동이 나를 지배했다. 조만간 요리를 배우러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엔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선호하게 되었고,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재료를 이리저리 숨기며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SNS에도 간단하고 건강한 레시피가 많이 공유되고 있어 따라 하기 한결 쉬워져 다행이다 싶다.      




어느새 나는 반복되는 메뉴가 없도록 식단 달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반복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골고루 영양소를 챙기려 노력한다. 이 기록을 채우다 보면 미리 식단을 작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기대하며 매일 고민하고 먹었던 메뉴들을 기록해 둔다. 남편도 이제는 식단 달력을 보며 다양하게 짜인 식사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내 일이 늘어나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퇴사 후, 식단을 짜고 요리하는 것이 내 주요 업무가 될 줄은 상상이나 했던가. 방학이 되면 삼시 세끼의 ‘돌밥 돌밥’에 대비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외출도 어려울 텐데, 삼시 세끼 주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어떤 식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지 주변 전업맘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마음의 준비부터 시작하고 있다.      







사람은 평생 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집안일을 거의 해보지 않고 자란 나는 결혼 후 모든 것이 처음부터 배움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는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났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해마다 새로운 과제들이 생겼다. 자라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워킹맘으로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지금은 전업주부의 삶에서 또 다시 새로운 배움을 맞이하고 있다.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부터 식단을 짜고 빠르게 요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사실 다 경험을 쌓으면서 하나씩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만의 질문을 찾는 일만 익숙하지 않으니, 배우고 쌓아야 하는 중요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도, 식단 짜기도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경험의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나와 가족을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하찮게 여길 일이 없다. 모든 일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과정임을 느낀다. 오늘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나와 가족의 내일을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기에 좀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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