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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여니 Dec 24. 2024

당신은 진짜 '잘 먹고' 있나요?

음식이 전하는 사랑의 언어

엄마와의 전화는 늘 "잘 먹고 다녀라" 인사로 끝난다. 건강관리와 다이어트를 해야 할 때조차 엄마는 늘 "잘 먹는 게 남는 거야"라고 당부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잘 막으라해서 이 몸을 유지하는 거라고' 괜히 내 몸에 대한 핑계를 엄마 탓으로 돌려본다.

몸이 좋지 않아 쉬면서 '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달았다. 단순 끼니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잘 먹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진짜 '잘 먹는다'는건 무엇일까?


무조건 건강식을 먹는 게 잘 먹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건강식이 아니어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게  잘 먹는 것일까? 

음식의 본질적 역할은 우선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필수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중요하다. 영양소를 공급해 몸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는 것이 음식의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먹는다'는 행위만으로 '잘 먹는다'라고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행복은 작은 것에서 온다.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나 좋은 대화가 삶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서은국교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를 행복이라고 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음식의 맛과 함께 나누는 대화 속 서로의 온기가 전해져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함께 먹어야만 '잘 먹는다'라고 할 수 있을까? 혼자서도 충분히 맛있게 잘 먹을 수도 있고, 때로는 함께 나누는 식사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는 음식의 순간들


음식은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흔히 스트레스받으면 살이 빠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반대다. 특히,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 달콤한 디저트를 통해 일시적인 해소감을 느끼곤 한다. 다만 음식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는 오히려 몸이 붓거나  살이 찌는 단점이 있다.



오랜만에 나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면 늘 나만의 아지트에 갔다.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던 그곳이다.

모처럼 그곳에 앉아 잠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곳에서의 음식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 준다. 구운 도넛과 크림 든 베이비링을 한 입 물고, 쓴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시면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이 순간만큼은 나를 위로하고 안정감을 주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 공간이야말로 내가 '잘 먹는다'는 느끼는 순간이다. 음식이 주는 위로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을 채워준다.



음식이 떠올리는 추억 


음식은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서울살이로 외롭고 힘겨웠던 20대 초반 시절 이상하게 순대국밥이 그리웠다. 어린 시절 강릉 중앙시장에서 아빠가 사주셨던  당면 가득 순대였다. 어릴 좋아하지 않던 음식인데, 시장에서 먹던 그 맛과 추억이 자주 떠올랐다. 서울에서 순대국밥을 먹어봐도 고향에서 먹는 그 맛을 찾을  없었다. 그래서 고향집에 갈 때마다 한 숟가락씩 떠먹으며 나의 서울살이의 모든 외로움, 고독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임신 중엔 평소 먹지 않던 엄마표 도라지무침이 그리웠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그런 나를 위해 정성껏 도라지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입덧으로  힘든 시기에 도라지에서 큰 에너지를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도라지를 먹으면 그 시절의 따뜻한 사랑이 떠오르며 묘한 에너지를 얻는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바뀐다. 특히 나물반찬이나, 최근에 우연히 먹은 배추 전 같은 것 소박한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어릴 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추억들과 함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할머니와 추억 있는 음식들이 너무나 좋아지고, 삼계탕 한 그릇 먹고 나면 진짜 회복되어 힘이 다시 솟아나기도 한다.



음식을 통해 나누는 사랑


지난 주말, 봉사활동을 마치고 동지 팥죽을 나누어 먹었다. 평소 즐기지 않던 팥죽인데, 금방 뚝딱 끓여주신 팥죽이 너무 맛있었다. 따뜻한 한 그릇은 뭔가 몸을 해독해 주는 것 같았다. 나쁜 것들이 사라지고 깨끗해져 건강해지는 기분. " 먹고 기운 내"라는 말들이 더해져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동글동글 하얀 새알심을 먹으면서 음식이 주는 위로와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그 사랑의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어 참 좋은 날이었다.  음식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한다. 그리고 단순한 영양섭취를 넘어, 정성과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잘 먹으라"는 의미는 음식에 담긴 마음과 정성을 대신 전해받으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나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도, 남을 위해 만든 음식도 모두 잘 먹으면 그 마음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힘이 있음을 가슴속 새겨본다. 단순히 음식을 넘어 곧 "잘 살아가라"는 말과 같았다. 음식에 담긴 마음과 정성을 느끼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음식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이다."
– 페넬로프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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