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도 변하지 않는 점심 어벤저스의 힘
8회사를 떠나며 자연스레 많은 인연이 끊겼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환경에 있어 친하게 지냈지만, 퇴사 이후 따로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가진 않았다. 그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옛사람들을 만나는 건 늘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직장 생활에서도 여러 부서를 오가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예전 인연들과의 만남은 점점 멀어졌다.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가끔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나 역시 재직 중일 때 퇴사자들에게 연락하진 않았기에 퇴사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길 기대하진 않았다.
그렇게 '시절 인연'들은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갔지만, 긴 시간이 흘러도 계속 이어지는 관계는 손에 꼽을 정도다. 나의 성향 탓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 편'이다.
함께 있는 동안에만 귀한 정을 나누고, 정말 특별한 몇몇만 관계를 이어갈 뿐, 거의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때론 그로 인해 작은 인연들이 나의 외로움의 한편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다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 관계가 대부분이다. 안 좋은 관계도 없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인연은 소수만 남을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주는 회사 언니들이 있다. 나에겐 ‘어벤저스’ 같은 존재다. 나보다 훨씬 선배님들이지만 늘 나를 예뻐해 주고, 챙겨주고, 때론 함께 속상해하며 토닥여주던 언니들이다.
퇴사를 결정했을 때, 가장 아쉬웠던 이유도 바로 그분들과의 헤어짐이었다. 유쾌한 언니들을 중심으로 늘 나의 점심 메이트가 되어 막내인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며, 때론 내 힘듦을 먼저 알아주던 분들이었다. 퇴사할 때 나의 선택을 오히려 가장 따뜻하게 축하해 준 이들이기도 하다.
지금도 퇴사 이후 나의 커피를 책임져주는 건 그 언니들이다. 직무해제된 지금에도 여전히 나의 그 직무로 불러주며, 챙겨주는 언니들이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작은 선물들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건 늘 조심스러웠다. 우연히 종로에서 잠깐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퇴사자와 현직자의 만남이 누군가에겐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들이 먼저 나를 찾았다.
“점심 산책하기 좋은 날인데, 얼른 한번 와서 밥 먹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종로로 향했다. 퇴사 이후 두 번째 방문이라 살짝 어색했지만,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길을 다시 걸었다. 예전엔 그렇게 멀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길이 언니들을 만날 생각에 가볍고 반가운 길이 되었다.
얼굴을 마주하자 어제까지 함께 점심 먹고 수다 떨던 사이처럼 반가웠다. 여전히 막내인 나를 챙기며 언니들이 점심을 사주셨고, 그 후엔 커피를 들고 산책길에 나섰다. 조금은 달라진 길을 소개받으며 그동안의 안부를 나눴고, 끊어졌던 대화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변해간 길과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다섯 명의 우리를 발견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짧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내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새로 생긴 가게를 구경하고, 몰래 언니들의 사진도 찍고, 함께 걷던 그 길을 다시 걸으며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작은 체험이 내 마음에 또 다른 위로로 남았다.
그 자리에 여전히 한결같이 있어주는 언니들.
그 따뜻한 인연이 참 소중하고 감사했다. 늘 나를 응원해 주고 버텨내게 해 준 힘이 그분들이었음을 다시금 느낀 하루였다.